하반기 경제정책, 물가 안정 기조 속 수출·투자 촉진
5월까지 국세 36조 덜 걷혀…경기 대응 효과 미지수
전문가 "추가 재정지출 필요…추경 가능성 열어둬야"
[세종=뉴시스] 오종택 박영주 임하은 기자 = 정부가 하반기 경제 정책의 무게 중심을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에 두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기로 했다. 물가가 안정세를 찾아가는 흐름이 유지되도록 관리에 치중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수출과 내수 경기에 불을 지핀다는 계획이다.
가용한 재원을 활용해 경기 회복을 확실히 뒷받침한다는 복안인데, 올해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경기 대응을 위한 실탄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4일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물가 안정 기조 속에 경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수출·투자 촉진 등 경기 대응에 초점을 뒀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앞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사전브리핑을 통해 "향후 거시정책은 물가 안정에 유의하면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조합을 신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작년 상반기부터 무섭게 치솟으며 민생을 위협하던 물가가 올해 들어 완만한 하향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2.7%)로 진입하며 2021년 9월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불안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함께 전기요금 등 누적된 공공요금 인상 압박으로 물가 부담 요인이 상존하지만 최근의 물가 흐름을 놓고 봤을 때 하반기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가 그 동안 바짝 조였던 허리띠를 풀어 적극적으로 경기 대응에 나설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은 크지 않다. 정부는 현재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투자나 수출에 있어 필요한 정책금융을 확대하고, 규제완화를 통해 동력이 유지되도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극적인 경기 반등을 이끌어내기에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대표적인 경기 대응 수단인 과감한 재정 투입 없이 '15조원+α' 규모 정책금융과 공공기관 투자에 의존해 하반기 경기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예산 사업을 뒷받침할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통한 경기 대응은 선택지에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임기 말까지 건전재정 기조를 흔들림 없이 견지하고 세수 부족이 있더라도 올해는 추경이나 적자국채 발행 없이 재정을 운영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랏빚이 이미 1000조원을 훌쩍 넘은 상황에서 추가로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윤석열 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에 어긋난다는 내부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세계잉여금과 기금 여유 재원, 불용 예산을 활용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2년도 국가결산'을 보면 세계잉여금은 9조1000억원이다.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6조원 중 지방교부세,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출연, 국가채무 상환 등을 제외하면 2조8000억원을 올해 세입에 활용할 수 있다. 활용 범위에 한계가 있는 특별회계 세계잉여금(3조1000억원)까지 모두 더하더라도 5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올해 불용예산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2014년(17조5000억원) 이후 8년 만에 최대 불용액(12조9000억원)이 발생했다. 올해는 연초 강력한 지출구조조정 등으로 평년 수준인 7조~8조원 수준의 불용이 예상된다.
하지만 경기 둔화가 장기화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 세수 부족에 따른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기대하고 있는 경기 대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세수입은 160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6조4000억원(-18.5%) 감소했다.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지난해만큼 세수가 들어오면 연간 국세수입은 359조5000억원으로 정부가 전망한 세수 전망치(400조5000억원)보다 41조원 덜 걷히게 된다.
정부의 전망치와 비교해 국세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보여주는 세수진도율은 40.0%로 지난해(49.7%)보다 9.7%포인트(p) 낮다.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기금 여유 재원, 세계잉여금 등의 가용재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은 정책 금융을 활용할 예정"이라며 "부족한 세수만큼의 재정 동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근원물가가 여전히 높은 만큼 경기 반등에 대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근원물가가 4%대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유동성이 시장에 풀리면 겨우 안정세를 찾은 물가가 다시 자극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수출 회복과 경기 반등의 불씨를 확실히 살리기 위해서는 추경을 포함한 다양한 대응 카드를 선택지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연히 지출 구조조정이나 여유자금으로 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는 추가적인 재정 지출에 대해서도 열어 놓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가 수십조원 비게 생겼는데 다른 쪽에서 메꾸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경기를 띄워야 한다면서 긴축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경기 대응을 제대로 하려면 추경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추경도 테이블 위해 올려놓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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