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 수어의 울림…연극 '우리 읍내'[강진아의 이 공연Pick]
[서울=뉴시스]연극 '우리 읍내'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2023.06.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어릴 적부터 한동네에 살던 민규와 풋풋하고 설레는 사랑을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한 현영. 하지만 생각보다 그 시간은 짧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된 그녀, 저세상으로 가기 전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10대였던 1981년 자신의 생일날로 돌아간다. 평범했던 여느 날의 하루처럼,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을 짓고 아빠와 동생은 밥상에서 시끌벅적하다.
가족들이 떠들고 웃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잠시, 현영은 한 구석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부모님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정적 속에 손짓으로 말한다. 그 순간 고요함만이 감도는 공연장에서 대사는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서로를 보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모든 게 지나가는데 그걸 모르고 사는 거죠."
[서울=뉴시스]연극 '우리 읍내'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2023.06.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 오른 연극 '우리 읍내'는 일상의 소중함과 더불어 사는 삶을 그려낸 순한 맛의 작품이다.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희곡으로 20세기 초 미국의 작은 마을 이야기를 1980년대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경북 울진군 평해읍으로 옮겨왔다.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은 없다. 마을 사람들의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잔잔하게 흘러가며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한다. 천상병의 시 '귀천'을 가사로 차용한 노래가 푸르스름한 새벽녘 같은 무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여운을 전한다.
특히 작품엔 수어를 제1언어로 쓰는 두 명의 농인 배우가 출연한다. 각색 과정에서 등장인물의 설정을 바꿔 장애인을 가족·친구로 둔 이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배우 박지영이 극의 중심에 있는 현영 역으로 차분하게 감정 연기를 펼쳐내며, 배우 김우경이 신문 배달부 및 무대감독 수어 통역으로 통통 튀는 표정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서울=뉴시스]연극 '우리 읍내'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2023.06.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무대에선 수어와 대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음성으로 한 대사에 수어로 답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청인(음성언어를 제1언어로 쓰는 비장애인) 배우들도 말로 대사를 하는 동시에 수어를 하면서 농인 배우들과 호흡한다. 장애를 부각하려 하지 않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한글 자막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함께 이뤄져 장애의 장벽 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다. 무대 한쪽엔 수어 통역사 5명이 올라 역할을 번갈아 가며 수어 통역을 하고, 음성 해설사 1명은 FM수신기를 통해 극 해설과 수어 대사를 들려준다. 음성 해설을 들으며 극을 보거나 수신기 없이 침묵 속에 펼쳐지는 수어 연기에 집중하며 다양하게 극을 느낄 수 있다.
[서울=뉴시스]연극 '우리 읍내'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장 제공) 2023.06.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신체극 '보이첵', 연극 '스카팽' 등을 선보이며 한국 신체극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임도완이 연출을 맡았다. 임 연출은 지난 21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농인과 청인이 같이 공연한다는 특별한 의미보다는 일상의 우리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드러내는 작품"이라며 "이 공연을 보고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공연은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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