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한때 800원대로 급락
日 수출 기업 가격경쟁력 올라가
화학·車·철강 국내산업 피해 우려
현장선 "과거와 달라…영향 없다"
한일 경쟁 줄고…달러 결제 늘어
◆8년 만에 엔화 가치 최저
2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엔 환율은 지난 4월 초만 해도 100엔당 1000원 정도다. 하지만 일본이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에도 초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지난달부터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서는 원·엔 환율이 900원 선까지 위협받기 시작했다. 지난 19일에는 장중 한때 8년 만에 처음으로 800원대로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과 경합 관계에 있는 수출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수출경합도는 69.2로 주요 수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어 한국과 미국 68.5, 한국과 독일 60.3, 한국과 중국 56.0의 순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엔화 가치가 1%p 낮아지면 우리나라 수출 가격이 0.41%p 하락하고, 수출 물량도 0.20%p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초 엔저가 원자재 등 수입액을 증가시켜 무역적자를 심화시키고 이는 다시 엔화 약세로 이어져 무역적자가 급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2007년과 2015년 과거 엔화 약세가 진행될 때 국내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이 업종이 큰 손해를 입었다. 환율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해 일본으로의 수출량이 줄었고, 채산성과 경쟁력이 약화했다.
◆낮아진 경합도…"과거와 다를 것"
산업 현장에서는 국내 기술 경쟁력 확보와 해외 투자 활성화 등으로 엔저가 예전처럼 큰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대다수다. 양국의 경제 구조도 달라져 수출시장에서 서로 경합하는 부분이 줄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수출 경합도 지수는 2011년 0.475에서 2021년 0.458로 하락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은 경쟁 구도가 많이 약해진 상태라 국산 제품 대신 일본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부분이 없다"며 "일부 부품을 일본에서 조달하지만 제조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가전업계 관계자 역시 "엔화 약세로 국내 가전 기업 판매량이 영향을 받던 것은 10년 이상 된 이야기"라며 "글로벌 기준으로도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이 낮은 편이라 시장에서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반도체 업계도 일단 별다른 영향을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달러를 주 결제 통화로 삼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일본 소재·장비 기업과 거래를 할 때도 대부분 달러로 진행된다.
다만 일부 반도체 수출 시장에서 한일 업체 간 경합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은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제품이나, 이미지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과 경쟁 중이다. 엔저 효과로 수출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日도 해외 공장 많아 엔저효과 저감
많은 일본 기업이 자국이 아닌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는 점도 엔저가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요인이다. 어차피 해외에서 제품을 생산해 자국이나 제3국으로 수출하는 만큼 엔저 효과가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흡수성 소재는 기저귀에 사용하는 제품 가격은 국제 가격을 따른다. 일본 업체가 엔저를 등에 업어도 국제 가격을 조정하기 힘들다. 엔저 효과로 일본 기업이 수출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의 경쟁 업체 수출에까지 영향을 주기 힘든 상황이다.
정유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원유 거래는 대부분 달러로 진행된다. 일본 정유업체도 대부분 수출보다는 자국 수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엔저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 조선업도 비슷하다. 일본 조선사들은 이미 한국과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져 내수 위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선사 수주에서도 일본 쪽이 엔저를 앞세워 경쟁력이 좋아진다고 보지 않는다"며 "선사 발주가 이뤄지는 물량이 대부분 기술력을 요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저가 수주는 어차피 중국이 담당하게 돼 일본은 뒷순위로 밀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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