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그 옛날 충무로의 뒷이야기들

기사등록 2023/06/17 06:00:00
[서울=뉴시스] 영화감독 이만희(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 제공) 2023.05.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언젠가 어느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시나리오 작가 유지형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유 선생이 유년기에 일제 강점기 가장 큰 유곽인 신정유곽이 있던 묵정동에서 살았던 것을 알게 됐다. 그 무렵 극장과 유곽, 공원이 어우러진 일본식 흥행가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쓰고 있었던 나는 선생이 살던 그곳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선생이 살던 곳은 아직 유곽의 흔적이 남아 있던 일본식 가옥이었다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고 서울로 몰려든 피난민들을 보듬어 안던 낡은 집들에 얽힌 추억들을 들려줬다.

선생은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퇴색됐지만 여전히 화려한 장식을 뽐내던 유곽 건물에서 시작해, 선생이 조감독으로 있으며 모셨던 이만희 감독으로, 태흥영화사에서 만든 영화 ‘장군의 아들’ 흥행 기록 기념 파티에서 일어난 해프닝과 영화로 만들어진 선생의 작품 ‘금홍아 금홍아’로 이야기는 술술 이어졌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좌중은 선생의 목소리 하나하나까지 놓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리가 파하면서 선생의 충무로 비사를 기록으로 남겼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고, 한동안 진지하게 선생을 인터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다.

1948년생인 그는 나에겐 아버지뻘 연배였음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단단해 보였으며, 패션에 관심을 기울인 듯 화려한 의상을 입었다. 내가 젊은 영화학도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상당히 많은 충무로 비사들을 들려주었다. 그중 내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한 획을 그은 ‘산딸기’ 시리즈의 탄생 비화다.

1980년대 초반 정비석의 단편 ‘성황당’을 원작으로 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비롯해 향토색 짙은 에로영화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유 선생은 심혈을 기울여 이효석의 단편소설 ‘분녀’를 각색해 각 영화사에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자 상심이 컸다.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시나리오를 고쳐 보려 했지만 공들여 쓴 작품이라 고칠 곳이 없었다. 단, ‘분녀’라는 제목이 문제인 것 같아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산딸기’로 제목만 바꿔 다시 각 영화사로 시나리오를 보냈다. 시나리오를 보내자마자 여러 영화사에서 영화로 만들자며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가 문제가 아니라 제목이 문제였던 것이다.

김수형 감독이 연출을 맡은 ‘산딸기’는 크게 흥행했다. 제작자는 돈다발을 내밀며 속편을 만들자고 했다. 속편 집필 승낙을 하고 글을 쓰려는데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잡지 ‘뿌리 깊은 나무’였다. 이 잡지에는 산업화, 도시화로 이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담긴 글들이 많았다.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며 소재를 찾았고,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유지형 선생이 쓴 ‘영화감독 이만희’(다빈치, 2005)를 읽다 보니 오래전 선생에게 충무로 비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만희 감독 사망 30주기를 맞아 쓴 이 책은 이만희 영화의 특징들이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전쟁영화 속 밥과 관련한 장면들은 자칫 도식적일 수 있는 전쟁영화의 구도에서 쉽게 간과되는 인간적인 면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들국화는 피었는데’에서 적의 탱크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지기로 하고 밥 한 그릇을 물에 말아 먹는 군인의 모습,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아침 시간에 적의 공세가 시작되자 “새끼들, 아침밥이나 처먹고 퍼붓든가 하지”하는 푸념 섞인 대사들이 그 예다. 유 선생은 “인간이기에 전쟁 중에도 밥은 먹어야 하고 피난을 가도 밥솥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며 이만희의 전쟁 영화 속 살아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날 유 선생의 이야기에 흠뻑 빠졌던 것은 이야기를 간추리는 깔끔한 화술이 아니라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디테일에 있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2023년의 나는 유 선생의 ‘영화감독 이만희’를 읽고 있고, 1961년부터 1975년까지 쉼 없이 영화를 만들던 이만희는 50년 전인 1973년 영화를 단 한 편도 개봉하지 못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