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보다 시야 좁은 어린이들에게 '공포의 도로'
어린이피해 교통사고 35.7%가 이면도로서 발생
5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전 10시30분께 경기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의 한 이면도로에서 2살 남자 아이가 우회전하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여 숨졌다. 사고가 난 도로는 신호등이 없고 차량과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이면도로였다. 사고 당시 이 아이는 5세 형과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한 달여 앞선 지난 4월19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이면도로에서는 3살 여자 아이가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는 현장에서 응급조치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면도로상에서 음주운전에 의해 희생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 언북초등학교 후문 앞 이면도로에서 발생한 9살 초등학생 이동원군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술을 마시고 차를 몰았던 40대 남성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28%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그는 최근 1심에서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면도로가 어린이 피해 교통사고 다발 지역이라는 것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2018~2022년 통학 시간대에 발생한 어린이 피해자(만 7~12세) 사고 4837건을 분석한 결과, 이면도로에서 발생한 어린이 피해 교통사고가 전체의 35.7%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특히 도로가 좁고 교통량이 많은 상업지구 인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거나 거주하는 학부모들은 특히 우려가 크다.
취재진이 이날 오전 시장이 맞닿아 있는 서울 관악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을 30여분간 관찰한 결과, 물건을 실은 트럭들이 어린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이 수차례 목격됐다. 학교 정문에서 채 5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면도로로,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하굣길이다.
이 학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최모(41)씨는 "회사에 늦더라도 아이를 꼭 학교에 데려다준다"며 "며칠 전에는 트럭 사이드미러에 손이 부딪치기도 했다. 아이 등굣길이 위험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거나, 보도와 차도의 구분을 위해 도로에 색을 입히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안전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외에서는 차량이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를 설계하려는 시도를 일찍이 시도했다. 스웨덴·영국 등에서는 '스쿨존'보다 보호 범위를 넓힌 '홈존(Home Zone)' 제도가 있다. 아이들이 뛰놀고 자전거를 타는 지역사회 전체를 보호구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마을 가운데로는 차량이 아예 못 들어간다. 주차장도 마을 외곽에 둔다.
통학로 개선 프로젝트 '그린로드' 사업을 진행한 김상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옹호사업팀 과장은 "우리나라 도로 대부분은 보행자보다 차를 우선해서 설계돼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면도로"라며 "차량 중심이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로 설계해야 이면도로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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