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움직이는 조각의 마법
모노하 창시자 이우환...'철판과 돌' 문명·자연 대화 초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내 상업 화랑중 가장 전시를 잘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국제갤러리다. 가나, 현대와 함께 국내 3대 화랑으로 불리지만, 이미 2곳을 제치고 이름답게 국제적인 면모를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견은 없을 것이라 본다. 물론 자사 굵직한 작가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작가들을 품고 있는 화랑의 위세는 타 화랑들을 압도한다. 특히 같은 작품도 달라보이는 '있어빌리티'한 세련된 전시 연출 미학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82년 서울 인사동에 국제화랑으로 개관한 후 40년 간 확장세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알렉산더 칼더, 우고 론디노네, 장-미셸 오토니엘, 제니 홀저, 줄리안 오피 등 세계적인 작가 전시를 잇따라 열었고,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최욱경 양혜규 문성식 등 K아트의 세련된 현대미술을 국내외에 알렸다. 국제화랑 창업주 이현숙 회장은 전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영국 잡지 '아트리뷰 '파워100'에 매년 선정되고 있다.
미술 사업은 그림 장사이지만 단순하게 장사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가 국력이 되는 시대, 갤러리 운영은 나라의 문화 품격과 국격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미술관급 전시를 선보이며 국민에 문화향유 기회를 넓히는 일은 갤러리의 '재능 기부'다. 수천~수십억짜리 작품도 공짜로 공개하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한다. 국제갤러리는 올해도 다른 화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시로 치고 나가고 있다.
4일 개막한 '이우환+알렉산더 칼더' 전시는 단지 유명 작가를 나열하는 전시가 아닌, 두 거장의 작업세계를 '알집'처럼 선보여 의미가 있다. '교과서에 나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거나, '철판에 돌하나 놓고 작품이라니'라며 대단치 않게 여겼다면 이번 전시는 천천히 보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대형 전시지만 회고전 처럼 방대하게 작품을 늘어놓지 않아 작품의 감각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관람료도 없다. 작품에 맞춰 전시장을 꾸미고 최선을 다한 작가와 화랑의 마음이 녹아 있다. 모두 관람객을 위해 존재한다. 미술은 그래서 '아름다운 술'이라 부르며 혼자 취하게 한다.
◆모빌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움직이는 조각의 마법
'모빌'은 균형감의 극치다. 독특한 생동력과 공간적 역동성이 잘 드러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로 꼽히는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다. 조각을 조각으로부터 해방시킨 혁신가다. '움직이는 조각'은 받침대 위의 ‘고정적 오브제로서의 조각’이라는 관습적 개념을 깼을 뿐만 아니라 브론즈와 돌 등 양감에서도 해방시켜 현대 조각 미술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189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조각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났다. 스티븐스 공과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1923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다시 입학하여 4년 간 회화를 전공했다. 철사를 구부리고 일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대상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조각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그는 철사를 비롯하여 평범한 조각적 재료들을 사용한 퍼포먼스 작품 '칼더의 서커스'를 제작하여 당대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1930년 피에트 몬드리안의 스튜디오 방문을 계기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하는 전환점이 되면서 그의 유명한 '키네틱 조각'이 발명됐다.
변기 '샘'으로 현대미술사를 뒤바꾼 마르셸 뒤샹에 의해 '모빌(mobile)'이라 명명된 이 조각들은 초기에는 손이나 작은 전기 모터로 구동되었으나, 1934년부터 기류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조각으로 발전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 칼더는 거대한 규모의 야외 설치 작업에 몰두했다. 1960년대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알록달록한 모빌은 비행장, 미술관, 광장, 정원 등을 장악하며 세계 각지의 공공 기관에 세워졌다. (리움미술관 야외정원에도 있다.)
이번 전시는 대표적인 ‘모빌(mobile)’과 과슈 작업을 선별했다. 국제갤러리에서 2014년 전시 이후 9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이자 2004년의 첫 개인전 이후 마련된 네 번째 전시인 만큼, 이번에는 작가가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인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조명한다.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모빌은 공간의 마법사다. K2와 K3에 나뉘어 전시된 칼더의 작품들은 살랑이는 바람에도 반응하며 분위기를 바꾼다. 스리슬쩍 일렁이는 '움직이는 조각'은 황금보다 빛난다.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함을 알려준다.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
국내 살아있는 최고 비싼 작가로 더 유명한 이우환(87)화백은 심오한 철학가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단순함으로 가장한다. 철판 위에 돌을 하나 놓거나 화폭에 점 하나 찍어 놓고 '예술'이라 주창해 '예술의 위대한 허세'를 자극한다. 돌 나무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물과 물질 그 자체의 상태를 '예술 언어'로 활용하는 그의 작품은 애써 '그린다는 것'과 애써 '만드는 것'의 의미를 허물어트린다. 그는 젊은 시절인 1960년대 후반 일본으로 유학 가 전위적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창시하며 1970년대까지 일본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일본미술계에서도 '살아있는 현대미술' 전설로 통한다.
1980년대 부터 이어지고 있는 철판 위에 돌을 올려놓은 '관계항(Relatum)' 연작이 대표적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돌, 그리고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을 공간에 설치한다. 작품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이 작품에 개입하게 되는 시점으로 두 사물과의 세계가 열리고 이어지는 '관계', 즉 문명과 자연, 그 만남의 문이 열리는 '관계항'이 작동된다.
국내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이우환 전시는 1관의 2개 공간과 2관 2층, 그리고 정원에 걸쳐 전개된다.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공개했다. 특히 1관에 설치된 신작(Relatum – The Kiss)은 의인화된 은유의 예시를 보여준다. 작품의 부제는 ‘키스’로 사람 같은 두 개의 돌과 돌을 둘러싼 바닥의 두 개의 쇠사슬 또한 포개어지고 교차하면서 교집합 양상으로 '만남'을 제공한다. 입벌린 듯한 돌이 기대 키스하는 듯한 작품은 처음 선보여 이전 돌들보다 주목하게 만든다.
풀어내는 말이 어렵지만 작품은 단순하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함께한 작품은 공백이 있고, 공명이 있다.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미끼다. 그 순간 작품 안으로 끌려들어 가 ‘무한’한 만남의 장에 빠지게한다. 억겁의 시간을 뚫고 전시장까지 온 돌 들의 묵언수행속에 '현실을 느끼고 생각하는 지금에 충실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우환 화백이 '관계항' 연작 등 자신의 작품 메시지를 설명한 글을 전한다.
“현시대가 신이나 ‘인간’이라는 망령 그리고 정보라는 망령한테 홀려서 맥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망령이 전세계, 어쩌면 우주론까지 뒤덮으려고 하고 있어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신체일 수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고,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실체나 외부가 없는 닫혀진 세계입니다.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전시는 5월28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