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꺼지지 않은 불, 주정에 붙어 푸르게 타 올라
고향사랑기부제 대표적 답례품…"납품 차질" 울상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신광면 전통주 '레드마운틴' 생산공장.
직선거리로 3.3㎞ 떨어진 연암리에서 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이곳까지 화마의 손길을 뻗쳤다. 공장 4개 동을 모두 태운 불은 가까스로 진화됐지만 현장에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까만 잿가루가 온종일 공기 중에 날아다녔다.
거센 불길을 온몸으로 막아온 공장 외벽은 까맣게 탄 채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외벽을 받치던 철골도 흙더미에 깔린 듯 주저앉았고, 바닥엔 검은 잿물이 흘렀다. 아직 꺼지지 않은 잔불은 보관하고 있던 주정에 붙어 푸른 빛을 내며 잔잔하게 타오르고도 있었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삶의 터전을 두 눈으로 확인한 10여 명의 직원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완제품들은 물론 지게차까지, 모든 것이 잿더미 속에 파묻혔다.
착잡한 표정을 짓던 한 직원은 잿더미 속에 파묻힌 술병들을 하나 둘 꺼내 바닥에 세웠다. 검붉은 내용물은 온전했지만 내다 팔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병뚜껑과 라벨 등 화마가 할퀴고 간 깊은 상처에 고개를 숙였다.
앞서 2006년에는 또 다른 제품 '레드마운틴'이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 당시에 민족통일대축전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에서 공식 건배주와 만찬주로 올라 호평을 받기도 했다. 레드마운틴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올해부터 함평군에서 지정한 답례품 93개 품목 중 대표 상품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산불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공장이 모두 불에 타면서 입은 막심한 손해는 물론, 고향사랑기부제라는 고정 공급처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납품해보기도 전에 비극이 닥쳤다.
까맣게 타버린 술병과 잔해물들을 바라보며 속절없는 대책회의를 여는 것 만이 최선이었다. 답답함을 부둥켜안은 채 끊없는 한 숨만 내쉬었다.
화재 당시 공장에 있던 한 직원은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분 탓에 산 중턱에서 내려오던 불이 순식간에 공장으로 덮쳤고, 헬기가 물을 뿌려도 속수무책이었다"며 "근무중이던 직원 6명은 모두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일터가 이 모양이 돼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은 "사무실과 연구실, 원료 숙성고, 저온창고 등 4개 동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며 "잿더미 속에서 꺼낸 술병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전날 낮 12시20분께 발생한 산불로, 함평에는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됐고, 10여 대의 헬기, 70여 대의 장비와 함께 1000명 가까운 진화 인력이 투입됐다. 500㏊ 가까운 소중한 산림자원이 잿더미를 변했고, 복분자 공장과 돈사, 비닐하우스 등도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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