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한국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故)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장남이자 고(故) 오승윤(1939~2006) 화백의 형으로 호남을 대표하는 미술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두 아들은 서양화가인 오병욱 동국대 교수와 오상욱 조각가다.
193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조선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해인 1957년부터 1960년까지 국전에서 4년 연속 특선을 차지했다. 31세엔 추천작가 반열에 올랐다.
전통의 근원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시기별로 불상, 산, 꽃, 동양건축물 등을 소재로 작업해왔다. 1980년대 '한국의 100산'을 비롯해 1990년대 '동양의 원형', 2000년대 '십장생도' 등 연작 시리즈를 선보였다.
1970년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및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및 운영위원을 지냈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사단법인 목우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국 구상미술계를 이끌어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부친에 이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서울시 문화상, 옥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11년에는 전남 무안군에 작품 175점을 기증하며 오승우 미술관이 개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목포자연사박물관, 조선대 등에도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며 예술의 사회 환원을 실천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일 오전 9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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