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생' 신드롬...4년 만에 15권 출간
"이번엔 중소기업…무역회사 직원들이 조력자"
"매번 취재하고 작업...납득할 만큼 이야기 만들어야"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중소기업은 회사 자체가 미생인 곳이에요. 오너 한 명으로도 회사가 휘청휘청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만화가 윤태호는 10여 년 전 한국 사회에 '미생' 신드롬을 일으켰다. '아직 두 집을 만들지 못해 온전히 살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바둑 용어는 그가 2012년 웹툰 '미생'을 연재하며 비정규직과 인턴 등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회초년생을 부르는 말이 됐다.
그가 2015년 시즌2를 시작하며 주목한 것은 중소기업이다. 2012년부터 2년간 사회초년생 장그래를 중심으로 회사원 개개인을 미생으로 봤다면 이제는 하나의 기업이 그에게 '미생'이다.
윤 작가는 "취재하다 보니 중소기업은 사주에 대한 평가가 대기업에 있는 사주나 임원진들의 평가에 비해 굉장히 박하다고 느꼈다"며 "사주가 입원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회수해가고 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중소기업은 참 어렵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5년 시작된 시즌2는 지난 2018~2021년 공백기가 있었다. 건강 문제로 연재를 중단하고 이후 '어린' 등의 작품을 연재 4년 만인 지난해 중소기업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단행본 또한 2019년 10월 14권을 출간하고 지난달 15권이 출간됐다.
최근 4년 만에 '미생' 단행본을 출간한 윤태호 작가를 서울 마포구 슈포코믹스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만화의 디테일은 '취재'…"안 본 건 못 그리게 됐다"
"취재에 맛을 들인 사람의 한계는 직접 안 본 건 못 그리게 된다는 거에요."
윤태호는 '이끼', '내부자들', '미생' 등 작품뿐만 아니라 취재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만화로도 그리지 않는다. 신안 앞바다 보물을 도굴하는 이야기를 담은 웹툰 '파인'은 신안 앞바다를 직접 찾아 드론을 띄워 촬영까지 했으며 남극을 배경으로 한 웹툰 '어린'은 2013년 소설가 천운영, 영화감독 정지우 등과 함께 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극지연구소를 직접 방문한 후 그렸다.
'미생' 속 현실적인 회사 이야기도 현장 취재에서 비롯됐다. 윤 작가는 '미생'의 첫 연재 당시 인연을 맺은 무역회사 직원들을 비롯해 시즌2의 취재를 도와준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코트라의 이들을 "조력자"라고 했다.
"내 연재 스케줄을 보면 목요일 하루를 밤샘 작업하고 그 외에는 거의 밖에서 돌아다닌다. 조력자들을 만나 매번 취재를 하고 작업에 들어간다."
취재를 병행하는 이유는 '현재성'에 있다. "장편 연재를 하는 작가로서 불안감이 있다"는 윤 작가는 "애초에 기획된 이야기가 현재에도 유효할지 자신이 없어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한 에피소드의 개요를 가지고 조력자들을 찾아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묻게 된다"고 말했다.
"대사 하나를 쓰고 싶어도 직접 회사에 찾아가 물어봐요. 일반적인 사회인들이 쓰는 말과 무역회사에서 축약하는 무역 용어는 다르니까요. 스토리의 경우에는 조력자들을 설득하기도 해요. 그분들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하면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죠. 저는 독자들 이전에 그분들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 거예요."
◆'장그래'에 이입한 수많은 독자…"회사 취재 열심히 하는 계기 됐다"
윤태호는 11년째 '미생' 연재를 이어오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인기를 예상한 건 아니었다. '미생'은 단행본 판매 부수가 250만 부를 돌파하고 tvN 드라마로 인기를 끄는 것을 "지켜보며 놀라워하기도 바빴다"고 한다.
윤 작가가 특히 놀란 부분은 많은 이들이 장그래에 자신을 이입하고 공감한 점이다.
그는 "작품을 처음 구상하고 연재할 당시만 해도 '장그래'라는 캐릭터는 회사의 환경을 지켜보는 관찰자에 가까웠다"며 "그런데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갖는 서러움이나 비애가 크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부터 회사 취재에 더 열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회사생활 한번 해본 적 없는 윤 작가는 그렇게 이제는 회사생활을 꿰고 있는 만화가가 됐다.
"그래서 저도 시즌 1의 앞부분을 보면 낯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데 하면서요."
앞으로도 '미생' 연재를 이어간다.
시즌 2를 완결하고 이어서 시즌 3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착', '출장', '결혼' 총 3부로 나눠진 시즌 2는 현재 장그래의 '출장'에 이어 회사원들의 '결혼'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윤 작가는 "결혼도 낭만적인 연애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사회인의 결혼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내년 봄까지 시즌 2 연재를 마칠 예정"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만화를 그리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살자는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요. 소년만화에 뜨거움이 있다면 성인 만화에는 위로와 슬픔이 공존하는 일종의 페이소스가 있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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