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애·이살눔…경기도 여성 독립운동가들, 위대한 족적

기사등록 2023/03/01 06:00:00 최종수정 2023/03/01 10:43:47

민족독립과 여성지위 향상에 힘쓴 여성 독립운동가들

김향화, 차인애, 이선경, 최문순, 오희옥

[수원=뉴시스] 김종택 기자 = 3·1절을 이틀 앞둔 2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화성 창룡문에서 한국연연맹 회원들이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담긴 연을 날리고 있다. 2023.02.27. jtk@newsis.com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전국 거리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던 1919년 3·1운동이 올해로 104주년을 맞았다. 수원, 용인, 파주 등 경기도 곳곳에서도 3·1운동이 이어졌다.

3·1운동을 통해 당시 여성들은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19세기부터 기독교 선교의 하나로 여성 교육을 위해 세워진 여학교의 학생과 교회 활동을 펼치던 여성 기독교인이 주축이 됐다.

그들은 신여성으로서 3·1운동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면서 여성운동이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자리 잡도록 이끌었다.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민족의 독립과 여성 지위 향상에 힘써온 경기지역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를 돌아본다.

◆파주 최초의 시위를 이끈 구세군, 임명애
임명애. 국사편찬위원회 *재판매 및 DB 금지

28일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3·1운동을 주도하고,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감옥 같은 감방에서 옥고를 치른 여성독립운동가 임명애(林明愛·1886~1938)를 권애라·심영식·신관빈과 함께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임명애는 1886년 경기도 파주군 와서 면 교하리 578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남편 염규호와 함께 구세군으로 활동 중이었다.

그는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와서 면 교하리에 있는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00여 명을 이끌고 파주의 첫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3월25일에는 '3월28일 만세 시위를 일으킬 테니 모두 모이라'라는 격문 60여 매를 인쇄, 주민에게 배포했다. 또 거사 예정 이틀 전인 3월26일에도 만세 시위를 이끌었으며, 현장에서 체포돼 1919년 6월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투옥 당시 임신한 상태로 출산을 위해 잠시 가출옥했다가 1919년 11월에 재입감됐고, 1920년 9월25일 만기출옥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포의 유관순' 이살눔
이살눔.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유공자 정보 *재판매 및 DB 금지

김포 출신의 이살눔(李살눔·1886~1948)은 1919년 성서학교 학생으로 김포군 월곶면 고양리에서 성태영·백일환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했다.

같은 해 3월22일 군하리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하다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7월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8월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수원을 만세운동으로 물들인 기생 김향화
김향화. 수원박물관  *재판매 및 DB 금지

김향화(金香花·1897~미상)는 1919년 3월29일 경기 수원군 자혜병원 앞에서 기생 3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수원의 기생조합 출신인 김향화는 검진받기 위해 자혜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귀가할 때도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주도해 의기(義妓)로서 기상을 높였다.

만세 시위에 참여해 일경에 체포된 김향화는 5월27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국내와 미주에서 종횡무진 차인재
차인재.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고적조사 유공자 정보 *재판매 및 DB 금지

이화고등보통학교 출신의 차인재(車仁載·1895~1971)는 1920년 6월 경기도 수원군에서 삼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선태 등이 조직한 구국민단(救國民團)에 참여, 동지를 규합했다.

구국민단 조직 발각을 전후한 7월 말 미국으로 이주해 8월 임치호(林致昊)와 결혼하면서 남편 성을 따라 임인재로 개명했다.

1921년 3월 맥스웰에서 한국인 아동의 국어 교육을 위해 교실을 만들고 수업을 했고, 1924년 대한인국민회 맥스웰지방회 학무로 선정됐다. 이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해방 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이 기간 그는 ▲대한인국민회 맥스웰지방회 학무원 ▲대한여자애국단 로스앤젤레스지부 회장·부단장·서기·재무 ▲여자청년회 서기 ▲대한여자애국단 총단 서기·총부 위원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집행위원·총무·교육위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선전과장·군자금 모집 위원 등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
이선경. 수원박물관  *재판매 및 DB 금지

이선경(李善卿·1902~1921)은 1920년 6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수원 삼일여학교 교사 차인재의 소개로 임순남·최문순 등과 함께 비밀결사 구국민단 결성에 참여했다.

'독립국가 건설'과 '독립운동 입감자의 유족 구조' 등 2대 목표를 표방하는 구국민단에서 구제부장을 담당했다. 또 삼일학교에서 '대한민보', '독립신문' 배포를 논의하고,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호부가 돼 독립운동을 도울 것을 맹세했다.

하지만 그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기 위해 8월9일 수원을 출발해 상해로 향하다가 경성에서 체포돼 1921년 4월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구국민단 재무부장 최문순
최문순 구국민단판결문. 국사편찬위원회  *재판매 및 DB 금지

최문순(崔文順·1903~미상)은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0년 6월20일 차인재로부터 '독립신문' 배포 활동을 하던 이종상·박선태를 소개받았고, 이들의 권유로 임순남·이선경 등과 함께 '구국민단'을 조직했다.

구국민단 재무부장을 맡은 최문순은 '대한민보' 등 배포를 담당했으며, 장차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적십자회(赤十字會)에 들어가 간호부가 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같은 활동으로 수원경찰서에 체포돼 1921년 4월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죄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뒤 삼일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면서, 1924년4월 수원시내의 기독교 계통의 부인야학에서도 활동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유일 생존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오희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유공자정보 *재판매 및 DB 금지

오희옥(吳姬玉)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인 오인수 의병장(1867-1935)을 시작으로 3대(代)가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 명문가다.  광복군 장군으로 활동한 오광선 장군(1896~1967)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 정현숙 애국지사 사이에서 2남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수집, 군대 모집, 연극·무용 등을 통한 한국인 사병에 대한 위무 활동에 종사했으며, 1941년 1월1일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될 때까지 활동했다. 또 1944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도 활동했다.

오희옥은 용인시와 용인 시민 등의 기부로 마련된 원삼면 죽능리에 '독립운동가의 집'에서 생활하다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져 현재까지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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