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100일]②"매일 아침 딸 방에 들어가…지옥이란 말로도 부족"

기사등록 2023/02/04 06:01:00 최종수정 2023/02/04 06:59:16

결혼 앞두고 있던 故이주영씨 부친 이정민씨 인터뷰

"딸이 사라진 '이유' 밝히는 게 삶의 목적"

'마약 수사·구조 과정·알몸 검시' 핵심 의혹

"의혹 해명하면 조사기구 설치 필요 없어"

"참사 정치화 반복…2차가해 방지 입법必"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02.04. livertrent@newsis.com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그날 이후, 매일 아침 아무도 없는 딸 방에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네가 억울하지 않게 끔 의혹을 밝혀내겠다고, 내가 최선을 다하겠으니 힘을 달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걸 바쳐 키운 딸이 이유 없이 사라지면서 제 존재의 이유도 없어졌어요. 지옥이란 말도 부족하죠. 이제 딸이 사라진 이유를 밝히는 게 제 삶의 목적입니다."

이정민(61)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딸 故이주영씨를 이태원 참사로 잃었다.

지난 100일은 딸을 향한 약속으로 채웠다. 격려도 투정도 딸에게선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지만, 이씨는 매일 아침 딸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다짐을 반복한다.

100여번의 다짐이 이어질 동안 경찰 수사가 끝났고 정치권의 국정조사도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씨의 약속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협의회) 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씨는 지난 1일 뉴시스와 만나 "유가족이 원하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의 마약 수사', '소방의 구조 및 수습의 결함', '유족 동의 없는 알몸 검시'가 유가족이 문제 삼고 있는 핵심 의혹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집중 추모주간이었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분향소에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3.01.31. chocrystal@newsis.com

◆'이유' 없이 사리진 딸…"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아직 몰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지난달 13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최종 수사 브리핑을 열고, 사고 발생 원인으로 '군중 유체화'를 지목했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사람들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물처럼 떠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사망 사고가 발생한 이유보다,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기관의 책임자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 위험성을 키웠고, 사고 이후에는 어떤 지침을 따르지 않아 참사로 키웠는지가 밝혀져야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누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며 "하지만 윗선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유족들 사이에서는 특별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핵심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전문가로 조사기구를 구성해 접근할 것"이라면서 "이후 책임이 소명되면 특검 등을 통해 조사와 처벌을 하도록 만들어야 명확하게 의혹이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02.04. livertrent@newsis.com

◆"정부가 아이들을 잠재적 마약사범 취급"…남은 의문점들

이씨는 특별조사기구를 통해 유가족들이 공통으로 지목하고 있는 핵심 의혹인 ▲경찰의 마약 수사 ▲소방의 구조 및 수습의 결함 ▲유족 동의 없는 알몸 검시 등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이 참사를 막지 못한 핵심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가 제기하고 있는 의혹의 핵심은 정부가 우리 아이들을 잠재적 마약 사범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37명의 경찰이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 투입돼 있었지만, 절반이 넘는 69명이 사복 경찰이었고, 그중 50명이 마약 수사를 위해 투입됐다"며 "마약 범죄에서 성과를 내려 하는 정부와 경찰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타깃으로 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투입되던 기동대가 투입 안 됐고, 투입된 경찰마저 대부분 사복 경찰이기 때문에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사 발생 전부터 접수된 100건의 구조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은 점을 보면 이렇게 큰 참사가 벌어질 줄 모르고 마약 수사에만 몰두한 것"이라며 "심지어 경찰은 참사 이후에도 시신 부검과 현장 물품을 통해 마약 검사를 진행했다. 윗선의 지시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 등이 마약 수사에 몰두한 나머지 참사 예방에 소홀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해선 당시 마약 수사에 투입된 사복 경찰관들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특수본이 입건한 24명 중 마약 수사에 나섰던 이들은 없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경찰청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지난해 11월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 현장에서 추가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22.11.07. jhope@newsis.com

유족들은 참사 당시 현장으로 출동한 구조 인력이 적었던 점,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높은 부상자를 중심으로 심폐소생술(CPR)이 이뤄진 점, 현장에 사망 판정을 내릴 의사가 없었음에도 시신들을 상가 건물에 모아뒀던 점, 시신을 가족 동의 없이 주변 병원으로 이송했던 점, 검시 절차를 마친 시신들이 모두 알몸이었던 점 등도 밝혀져야 한다고 보고있다.

이씨는 "마약 수사는 이래서 했다, 구조 인력은 이래서 적었다, 이래서 시신을 분산했다 등 적절한 해명이 나온다면 그 자체로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는 것"이라면서 "그런 해명이 이뤄진다면, 우리 의혹이 해소된다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조사기구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2차 가해는 사회적 재난…상처 주고 죽음으로 끌어"

그는 참사 트라우마와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재현군을 언급하며, 2차 가해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2차 가해는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159번째 희생자를 보며 다 같이 깨달아야 한다. 국회에서 정신 차리고 입법을 해야한다. 사람에게 무지하게 상처를 주고 죽음으로 이끈다면, 그건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없다. 자유라고 방치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세월호 때도 그렇고 참사의 정치화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진보 시민단체와 함께한다고 해서 좌파니 좌익이니 하는데, 그런 거 모른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모임일 뿐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 집단도, 정치인도, 시민단체도 아니다. 민변이나 시민단체와 함께하는 이유는 우리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상규명을 돕겠다고 했다면, 신자유연대의 손이라도 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02.04. livertrent@newsis.com

이씨는 딸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가 "밝혀냈다. 사과도 받아냈다"고 말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씨는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겁니다. 딸이 사라졌을 때, 다른 삶의 목적은 없어졌습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ez@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