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구 300만 시대…서울에는 반려동물 화장터 無
법적 규제와 사회적 공감대 부재로 설립에 차질 빚어
韓, 현행법상 반려동물 죽으면 폐기물로 처리해야
日,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 갖춰…美·中도 증가 추세
[서울=뉴시스]김래현 기자 = "죽은 반려동물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배출하라는 게 말이 되나요?"
권모씨는 3개월 전 반려견을 떠나보냈다. 권씨는 당시 지자체 관계자가 알려준 반려동물 사체 처리 방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가족보다 반려견과 가까웠다고 이야기하며 그런 존재가 죽었는데 어떻게 쓰레기봉투에 넣을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권씨는 반려견을 화장하려고 했지만 서울에는 반려동물 화장장이 없어서 경기도 남양주시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당일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연차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는 가족 같은 반려견을 위한 일이라 후회는 없지만 서울에 화장터가 있었다면 무리해서 연차를 사용하진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반려 가구가 300만을 넘었지만 반려동물 화장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312만9000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구가 많은 만큼 매년 적지 않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동물등록 정보를 기준으로 지난해에만 6만3493마리가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식장은 한참 부족한 실정이다.
16일 기준으로 경기도와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반려동물 화장터를 찾아보기 힘들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23개, 경상남도 8개, 경상북도·전라북도·충청북도가 각각 5개, 충청남도 4개, 부산·강원도에 각각 3개, 인천·세종·전라남도에 각각 2개, 대구·광주·울산이 각각 1개다.
특히 서울은 반려동물 화장장이 수요에 못 미치는 곳이다. 서울 시민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화장장은 없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응답자는 19.6%였다. 서울 인구가 1000만 명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이 동물과 같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화장장은 서울에 존재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기준으로 서울 지역 반려동물 화장장은 0개다. 2016년 20곳에 그쳤던 장례업체가 2020년 59곳으로 증가하는 동안에도 서울은 변화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주된 원인으로 법적 규제와 사회적 공감대 부재를 지목했다.
윤민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 주임은 "서울에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세울 수 있는 부지 자체가 없다"며 "국토계획법상 주거, 상업, 공업 지역에는 반려동물 화장장 설치가 아예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게다가 주택가, 학교 등 집합 시설에서 300m가 떨어져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며 "이런 조건을 다 충족하는 부지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발도 반려동물 화장장 설립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윤 주임은 "서울이 반려동물 장례 시설이 들어설 후보지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윤태 21그램 장례사업 파트장도 "장례식장이 들어서기 전에 관할 지역에 있는 동네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기피 시설에 해당하다 보니 힘들다"고 했다.
이학범 수의사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이 한 곳도 없다"며 "지방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지역에 관련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공약을 했지만 주민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반려동물 화장장 설치를 몇 번 검토했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화장터를 이용한 사람보다 땅에 묻은 사람이 더 많았다. 펫사료협회가 2018년에 한 조사에 따르면 죽은 반려견을 땅에 묻었다는 응답은 47.1%, 장묘 업체를 이용했다는 응답은 24.3%였다.
그러나 현행법상 반려동물 사체를 땅에 묻는 행위는 불법이다. 폐기물관리법은 반려동물이 동물병원에서 죽은 경우에는 의료폐기물로 분류해 동물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거나 폐기물처리업자에게 위탁해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에는 동물병원 외의 장소에서 죽은 경우에는 생활폐기물로 분류해 생활쓰레기봉투 등에 넣어 배출하라는 조항도 있다.
실제로 서울 한 지자체 관계자는 반려동물 사체 처리 방법을 묻자 종량제 봉투에 넣어 배출하라고 안내했다.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 동물 사체는 일반폐기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며 "땅에 묻는 행위는 경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합법적인 반려동물 사체 처리 방법에는 의료 폐기물, 쓰레기봉투 그리고 동물 장묘업 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서울에는 반려동물 화장장이 없는데 지자체가 연계해줄 수 없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결국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서울에 거주하는 반려인은 경기도까지 가거나 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일본은 사람과 동등한 생명체로 여긴다. 미국에는 반려견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사회적 도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미시간 수의과대학은 1992년부터 펫로스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펫로스를 공감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일본 펫로스 증후군 관련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위로받았다는 응답이 87%에 달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반려동물 사체 처리 방식에도 반영됐다. 옆 나라 일본은 한국과 달리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이학범 수의사는 "일본은 1996년에 반려동물 기념 공원 수가 465개를 넘어섰다"며 "이곳에서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을 묻고, 장례식을 하고, 종종 방문해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도 반려동물 공동묘지가 있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ra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