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무너진 보고·지휘 체계...尹 "엄정 책임·대대적 혁신 필요"

기사등록 2022/11/07 09:53:27 최종수정 2022/11/07 10:03:41

용산서장, 관용차량 이동하려다 11시5분에 도착

경찰청장, 충북 제천서 자다가 0시14분 첫 보고

서울청장도 11시36분 전화 보고…0시25분 현장

참사 1시간 뒤에야 기동대 출동…11시40분 도착

주변 형사 10개팀 마약 단속만…단속 실적 전무

오후 10시44분에야 사고 인지하고 구조활동 실시

尹 "진상규명 철저 규명...결과 따라 엄정 책임 물을 것"

이임재 전 용산서장이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오후 10시59분쯤 서울 이태원 앤틱가구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 이태원파출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정진형 위용성 김지훈 기자 = 156명이 숨진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일선 현장을 지휘하는 용산경찰서장부터 지휘부에 이르기까지 보고가 줄줄이 늦었고, 기동대 출동마저 지연되는 등 경찰의 부실한 대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관용차에 탄 채 사고 현장 주변에서 우회로를 찾느라 1시간가량 허비했고, 그 사이 상부로의 보고는 늦어졌다. 지휘·보고 라인이 붕괴되면서 서울경찰청 차원의 기동대 투입은 1시간 뒤에야 이뤄졌다.

7일 경찰에 따르면, 현장 지휘관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은 관용차량으로 이동을 계속 시도하다가 오후 11시5분께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 전 서장은 오후 9시24분께 용산경찰서 인근 설렁탕집에서 23분 가량 저녁 식사를 한 뒤 9시47분께 관용차량을 타고 이태원으로 출발했다. 이때 술은 마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9시57분에서 10시 사이 녹사평역 인근까지 갔지만 교통 정체로 진입이 안 됐고, 경리단길, 하얏트호텔, 보광동 등으로 차량을 돌리며 계속 우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이 전 서장은 오후 10시55분에서 11시1분 사이 인근 엔틱가구거리에서 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해 11시5분께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1시간 가까이 차량 접근이 여의치 않았지만 걸어서 4분 만에 현장에 다다른 셈이다.

이 전 서장이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현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압사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CCTV에 찍힌 시각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10시20분 현장 인근에 도착했다는 상황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은 서울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했던 류미진 총경이 참사 발생 1시간24분이 지나 상황을 인지한 구체적 경위 조사도 진행 중이다. 류 총경은 자리를 비웠다가 당일 오후 11시39분 상황실로 복귀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아침 경찰들이 유류품 수색을 하고 있다. 2022.10.30. bluesoda@newsis.com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 당시 충북 제천을 방문해 등산 후 캠핑장에서 취침 중이었고, 경찰청 상황담당관의 문자메시지·전화 보고를 놓쳤다가 다음 날 0시14분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이후 5분 뒤인 0시19분에 김 청장에게 총력대응을 지시했다. 사고 발생 후 2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당일 퇴근 후 자택에 머무르다 오후 11시36분에서야 이임재 전 서장의 전화 보고를 받았다. 김 청장은 이후 오후 11시44분 서울청 경비과장, 48분 112치안종합상황실장, 56분 기동본부장에게 가용 부대를 급파하라고 각각 지시했다.

오후 11시57분에는 112치안종합상황실장에게 인접 경찰서의 교통경찰들을 추가로 사고 현장에 배치하라고 지시했고, 30일 0시10분께 재차 인접서의 형사들도 추가 배치하라고 했다.

김 청장은 자택에서 오후 11시56분께 택시로 한강진역까지 이동한 뒤 걸어서 30일 0시25분께 사고현장인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해 현장 지휘에 나섰다. 택시 이동 시간은 15분 가량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현장 지휘관부터 지휘부까지 현장 도착도, 보고도 늦게 이뤄지는 등 경찰 지휘·보고체계가 사실상 무너지면서 경찰 인력 투입도 줄줄이 늦어졌다.

서울경찰청 등이 더불어민주당 용산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이태원 현장 배치 경찰 부대 운영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사고 발생 후 사고 현장에 투입된 기동대는 총 5개 부대다.
 
이 가운데 첫 번째로 현장에 투입된 부대는 11기동대로, 당일 용산 인근에서 열린 촛불전환행동 등 집회 관리에 투입됐다가 오후 8시40분부터 용산에서 야간 거점 근무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오후 11시17분에 서울 용산경찰서로부터 출동 지시를 받고 11시40분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25분이 지난 후다.

그 다음으로 현장에 투입된 부대는 77기동대로, 종로에서 거점 근무 중 오후 11시33분께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출동 지시를 받고 이동해 11시50분 이태원 현장에 투입됐다.

여의도와 서초에서 각각 거점 근무를 하던 67기동대, 32기동대 역시 오후 11시50분께서야 출동 지시를 받고 이동했다. 이들은 각각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오전 0시10분, 0시30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51기동대는 한참 뒤인 오전 1시14분에 출동 지시를 받아 1시33분께 투입됐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11.07. yesphoto@newsis.com
또 당시 이태원 사고 현장에는 용산서 형사3팀, 강력3팀 등 총 10개 형사팀 인력 52명이 배치된 상태였지만, 핼러윈 축제와 관련된 클럽 등 마약류 단속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단속 실적은 한 건도 없었다.

특히 사고 발생 지점 역시 형사팀의 단속 구간에 포함돼 있었다. 다만 이들이 현장의 질서 유지 업무와 관련해서 수행한 일은 오후 9시33분께 용산서 형사기동차량을 이태원파출소 건너편 부근으로 이동시켜 인파 분산을 유도한 게 유일했다.

이들은 오후 10시44분에야 지원 요청을 받고 사고 발생을 인지했다고 한다. 급히 현장으로 이동한 형사 인력들은 사고 현장 주변 인파 분산 유도와 심폐소생술(CPR), 시신 및 환자 이송, 구조로 확보 등 구조활동을 실시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해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아무리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완벽한 매뉴얼을 준비했더라도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신속하게 전달, 공유되지 않는다면 적기에 필요한 조치가 실행될 수 없고, 이러한 비극은 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안전관리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신속한 보고체계에 관해 전반적인 제도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히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진상 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국민 여러분께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한 점 의혹 없이 공개하도록 하겠다"며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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