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2016년 미 대선 개입 때 우크라 분할 계획 전달" NYT

기사등록 2022/11/03 13:02:54 최종수정 2022/11/03 13:12:43

트럼프 선개 책임자 매너포트에 러 요원이 전달

직후 러의 클린턴 민주당 후보 비방·해킹 본격화

트럼프 재선 실패하자 푸틴 결국 우크라 침공

【뉴욕=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20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제71차 연례 앨프리드 E 스미스 추모재단 자선 만찬에 참석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한 참석자와 웃으며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16.10.21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선거 캠프 책임자 폴 매너포트가 러시아 정보 요원 콘스탄틴 킬림닉으로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자치국을 세울 계획임을 들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이같은 계획은 미국이 수십년 유지해온 우크라이나 독립 지지 정책에 반하는 것이었으나 트럼프 후보가 이미 미국의 대외관계를 전면 뒤업을 것으로 공언한 상태에서 킬림닉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러시아 정보기관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부정적 여론 조작에 나섰다고 NYT는 지적했다.

NYT는 푸틴이 주민투표 조작을 통해 불법적으로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합병한 것은 6년전 킬림닉이 문서로 제시한 방안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고 폭로했다. NYT는 이같은 사실을 로버트 뮐러 3세 특검의 수사시록과 공화당 주도 상원 정보위원회 조사 결과, 탄핵 청문회 기록, 최근 발견된 러시아 게이트 메모, 미국과 우크라이나인 50명 인터뷰, 매너포트와의 장시간 인터뷰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2016년 7월 28일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 지명을 받은 날 밤, 매너포트에게 러시아로부터 긴급 이메일이 왔다. 발신자는 콘스탄틴 킬림닉. 소련 연방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매너포트가 키이우에 두고 있는 컨설팅회사 책임자였다.

킬림닉은 이메일에서 긴 설명 없이 최대한 빨리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고만 했다. 두 사람은 각종 암호 통신을 해왔으며 킬림닉은 "캐비어"라는 단어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축출돼 러시아로 망명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관련 내용임을 알렸다. 매너포트가 즉각 응답했고 5일 뒤 두 사람이 만났다.

케네디 공항으로 입국한 킬림닉은 트럼프 사위 소유 트럼프 월드 건물 맨 위층 그랜드 아바나 룸에서 매너포트와 만났다. 킬림닉은 이 자리에서 비밀 계획을 공개했다. 마리우폴 계획이라는 이름의 이 계획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자치국을 수립해 야누코비치를 수반으로 앉히는 내용이었다.

킬림닉은 트럼프가 당선하면 마리우폴 계획 실행이 쉬워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려면 트럼프가 승리해야 했다. 두 사람은 격전지 여론조사 결과를 논의했다. 

만남 뒤 두 사람은 추적을 피해 각각 다른 문으로 방을 나섰지만 밤새 문자를 주고 받았다. 몇 주 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작원들이 클린턴 해킹과 방해 공작을 강화할 예정이었다. 이후 마리우폴 계획은 각주로 취급되고 잊혀졌다. 그러나 마리우폴계획은 푸틴이 현재 벌이고 있는 일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 민주주의 침탈은 지금껏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돼 왔으나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한 것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복속하려는 푸틴의 계획에 따른 것임이 확인됨으로써 두 사건이 밀접한 관계임이 드러났다.

트럼프 재임기에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푸틴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매너포트는 2005년 우크라이나 정계의 중심인물이 됐다. 러시아의 알루미늄 재벌 올렉 데리파스카가 매너포트의 정치 컨설팅회사를 우크라이나에 끌어 들였다. 푸틴은 러시아 부호들의 후원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대통령 후보로 동부 지역에서 성장한 야누코비치를 직접 선택했다. 야누코비치는 투표에서 졌지만 선거 부정을 주장한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재선거 결정을 이끌어냈고 승리했다.

그러자 데리파스카가 매너포트에게 야누코비치의 정당 재건을 주문했고 매너포트는 방안을 제시했다. 매너포트는 푸틴이 자신과 자신의 처방을 싫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너포트는 데리파스카의 자금을 받아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국제 선거 자문위원과 미 선거 전략가를 끌어들였다. 현지 정보를 위해 킬림닉을 채용했다. 킬림닉은 당시에도 러시아 첩자라는 소문이 있던 사람이었다. 첩보원을 양성하는 소련 군사언어학교를 나온 킬림닉은 러시아군에서 통역으로 일했다.

킬림닉은 매너포트의 주문에 따라 키이우 마이단 광장에 면한 사무실에서 야누코비치의 지역당이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우크라이나가 중개자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유럽연합(EU) 가입을 희망하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은 거부하는 내용이었다.

매너포트의 계획은 큰 성공을 거뒀다. 지역당이 2006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4년 뒤 야노코비치가 재선했다. 야누코비치는 통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매너포트는 큰 신임을 받았고 막대한 돈을 벌어 호화롭게 살았다. 야누코비치와 테니스를 치고 43만평의 대통령 별장에서 골프도 쳤다.

야뉴코비치는 야당 지도자를 투옥하고 언론을 탄압했다. 2012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러시아의 크름반도 세바스토폴항 조차 연장에 실패했다. 매너포트는 야누코비치의 외교정책 자문관으로 변신했다. 미국과 유럽에 대한 비밀 로비활동도 벌였다.

2013년 야누코비치가 유럽과의 관계를 중단하고 러시아와 경제관계를 강화하자 시위대가 마이단 광장을 점거했다. 경찰과 충돌하면서 수십명이 숨졌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도주했다. 몇 주 뒤 푸틴은 크름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로 진격했다.

매너포트는 2016년 3월 트럼프 선거 캠프 책임자가 됐다. 푸틴에게는 좋은 기회가 됐다. 공화당 선두 후보의 핵심 내부자가 러시아 요원 킬림닉과 가까운 사이였으니 말이다.

러시아가 선거 개입을 하는 동안 트럼프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야욕에 도움되는 입장을 유지했다. 공화당 전당대회 직전인 7월 트럼프는 NATO에 미온적 입장을 밝혀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측근에게는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3차 세계대전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7월27일엔 직접 크름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지지한다고 했다.

킬림닉이 다음 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그날 밤 매너포트에게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몇년 전 당신에게 최대의 검은 캐비어 단지를 준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돼 있었다. 3만달러 짜라 캐비어 단지를 매너포트에게 줬던 야누코비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킬림닉은 트럼프 빌딩 아바나룸에서 야누코비치의 우크라이나 평화 방안을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매너포트는 뒤에 특검 수사에서 마리우폴 계획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장악을 위한 우회로였음을 인정했다.

특검수사에서 밝혀진 내용이 또 있다. 매너포트와 킬림닉은 아바나룸 회의에서 트럼프가 격전 지역에서 받는 지지율이 담은 내부 여론조사 결과가 킬림닉에게 전달됐다. 트럼프 선거 캠프의 가장 은밀한 자료였다. 선거 승리를 위해 소셜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확산 전략을 강조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클린턴의 이미지를 공격해 민주당 우세 지역인 미시간, 미네소타, 펜실바니아, 위스컨신에서 승리해야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즈음 클린턴 후보에 대한 악의적 소셜 미디어 공격이 심해졌고 트럼프와 러시아 댓글팀은 클린턴 후보의 건강과 범죄 혐의를 유포시켰다. 매너포트가 핵심이라고 지목한 주에서도 같은 공작이 진행됐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킬림닉이 매너포트가 준 여론조사 결과를 러시아 군에 직접 전달했다.

매너포트는 우크라이나 의원이 매너포트에 지급된 1270만달러 장부를 폭로한 뒤 트럼프 선거책임자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에 당선한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부터 러시아에 빚을 갚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2015년 러시아 국영 TV 축하행사에서 3만3750달러를 받고 연설한 마이클 플린 예비역 소장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다. 플린은 공식 취임 전부터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를 만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한 제재를 해제했다. 신임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크름반도 침공과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를 이유로 러시아를 제재한 오바마 정부 조치를 비판했다.

취임식을 전후한 며칠 동안 매너포트는 킬림닉과 마리우폴 계획에 대해 암호 메시지 앱을 통해 논의했다. 매너포트는 아무런 공식 직위도 없이 트럼프 캠프 자문을 계속했고 킬림닉이 모스크바와 워싱턴을 오가면서 마리우폴 계획 세부 내용을 진전시켰다. 킬림닉은 매너포트에게 자신이 직접 야누코비치를 만나 마리우폴 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인정하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반대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발언도 했고 매너포트를 우크라이나 평화 특사로 지명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매너포트의 마이루폴 계획 지원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완전히 반전됐다. 트럼프 개인 변호사 줄리아니가 개입하면서 바이든 민주당 후보 아들 헌터 바이든의 수뢰의혹을 제기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증거 장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1억달러의 무기 지원을 이유도 없이 지연시키면서 압박했었다.

트럼프는 임기 막판에 매너포트를 사면했다. 트럼프가 낙선하면서 미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된 푸틴은 13개월 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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