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건설, 2조원 일산 주상복합 미분양으로 2010년부터 극심한 자금난
두산중공업 등 그룹 차원에서 두산건설 지원하지만 그룹 경영난 초래
이 과정에서 두산건설은 분당 정자동 부지 용도변경으로 경영개선 노려
두산그룹 "두산건설은 이미 매각, 입장 표명 부적절"
[서울=뉴시스] 옥승욱 기자 = 두산그룹의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공소장에 2013년과 2020년 2차례에 걸쳐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 빠진 원인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눈길을 끈다.
검찰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부지의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 정황을 수사하며 '두산건설 부실→ 두산중공업과 두산 등 두산그룹의 무리한 지원→ 두산그룹 전체의 부실'이 이뤄졌다고 본다. 검찰은 특히 사업비만 2조원에 달하는 일산 위브더제니스 분양이 두산건설 부실을 불렀고, 이 부실을 두산중공업과 두산이 무리하게 지원해주는 과정에서 두산그룹 전체의 부실화가 촉발됐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두산건설이 자금난 극복을 위해 노른자위 땅인 정자동 부지를 비싼 가격에 되팔려고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을 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두산건설, 일산 대규모 주상복합 미분양으로 '흔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두산건설은 2009년 총 사업비 2조원 규모의 일산위브더제니스아파트 2700가구 분양을 추진했다. 하지만 시행사 부도와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이 주상복합 아파트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벌어졌다. 두산건설은 아파트 완공 후에도 미분양에 시달리며 심각한 사업 적자를 맞게 됐다. 이 위브더제니스아파트 미분양이 2010년부터 두산건설의 심각한 자금난을 초래했다.
두산건설 위기는 당시 경영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두산건설 당기순이익은 2010년 59억원으로 급감한다. 급기야 2011년에는 2934억원 적자로 반전된다. 2019년 12월 상장폐지 때까지 두산건설의 9년간 당기순손실만 2조7219억원에 달한다.
당시 두산건설의 보유 현금도 급격히 줄었다. 2010년 5718억원에 달했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15년 502억원으로 감소했다. 반면 외부에서 빌린 돈인 '순차입금'은 2010년 이후부터 매년 1조원대를 보이며 2010~2015년 사이 연간 최대 2099억원이나 이자를 내야 했을 정도다. 2012년부터는 그마저 보유 현금으로 이자도 물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두산건설은 2010년 단기차입금 규모가 8933억원으로 전년 대비 20배 이상 늘며, 신용등급 하락까지 겹쳐 자금 조달이 더 힘들어진다. 이는 또 다시 고이율의 단기 차입금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두산건설, 자금난 극복 위해 정자동 부지 용도변경에 '사활'
두산건설은 심각한 자금난 속에서 사채 등을 발행하며 간신히 버텼다. 2010년 5월 1300억원 규모의 무보증 사채 발행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다시 1600억원 무보증 사채를 발행했다. 이듬해에도 5월부터 11월까지 단 6개월동안 7100억원의 사채 발행과 유상 증자를 이어갔다. 2012년에도 사채 발행과 단기 차입은 총 6차례 48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악의 자금난은 계속된다.
2010년 11월에는 7000억원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두산중공업의 자회사 두산메카텍을 두산건설이 흡수 합병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한번 무너진 위기의 둑은 쉽게 메울 수 없었다.
결국 두산건설은 2013년 1조원 규모의 '1차 재무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한다. 이를 신호탄으로 두산건설은 돈이 되는 자산은 모두 매각했다.
2013년 3월 서울 강남구 언주로 소재 두산건설 사옥을 1380억원에 팔았고, 같은해 4월 두산중공업과 총수 일가를 상대로 4500억원 유상증자도 단행했다. 이 시기에 두산건설은 두산중공업으로부터 배열회수보일러 사업 부문을 포함해 5716억원 규모의 현금 출자도 받는다.
사채와 우선주 발행도 다급하게 이어졌다. 2013년 3월부터 12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7700억원 규모의 사채와 상환전환우선주 발행이 실시됐다.
검찰 측은 두산건설 최고경영진이 정자동 부지에 주목한 것도 두산건설에 최악의 자금난이 몰아치던 2013년 11월 무렵으로 파악한다. 두산건설은 재무구조 개선방안의 일환으로 정자동 부지를 매각하길 원했다. 하지만 병원시설용지였던 이 부지는 용도가 '병원'으로 제한돼 매수자가 선뜻 나서지 않았다. 바로 이 상황에서 당시 두산건설 대표이사였던 이모씨가 성남시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정자동 부지의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에 총력전을 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다.
실제 이 결과 2014년 10월 성남시는 정자동 부지를 '병원시설용지'에서 '업무시설 용지'로 변경해주고, 용적률도 250%에서 960%로 대폭 상향 조정해줬다. 이전까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두산건설이 총 5차례나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을 요청했지만 성남시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산건설은 6차례나 문을 두드린 결과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을 끌어냈다.
성남시는 2015년 11월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이 반영된 도시관리계획까지 고시했고, 두산건설은 정자동 부지를 구입 가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두산건설은 도시관리계획 고시가 나온지 두 달여 만인 2016년 1월13일 정자동 부지 지분 57%를 두산중공업 등 5개 계열사에 1011억원을 받고 매각한다.
이듬해 6월에는 이 부지의 나머지 지분 43%를 시행사 디비씨에 764억원에 팔았다. 디비씨는 두산건설 등 두산그룹 계열사들이 정자동 부지 개발을 위해 출자한 시행사다.
두산건설은 이로써 126억원에 매입한 정자동 부지를 1775억원에 매각했다.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을 통해 매각 차익 1649억원을 올린 것이다. 2021년 1월 이 부지에는 27층짜리 분당두산타워가 들어섰다. 두산건설이 부지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은 고스란히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쓰였다.
◆두산건설 지원으로 두산중공업·두산 등 그룹 전체도 위기 맞아
하지만 두산건설 위기는 두산그룹 전체로 전이됐다. 두산건설 자금난 극복을 위해 두산중공업과 두산 등 핵심 계열사들이 끊임 없는 지원에 나섰지만 오히려 이런 지원이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두산건설에 촉발된 위기가 그룹 전체의 경영난을 부른 셈이다.
두산중공업과 두산 등은 계열사 합병과 사업 양수도, 지분 매각, 유상증자 및 사채 발행 참여 등으로 두산건설의 급한 불을 끄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10년 7000억원 현금을 보유한 두산메카텍 흡수 합병으로 시작한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두산건설 지원은 이후 4000억원 현금을 보유한 두산중공업 배열회수보일러 사업 양수(2013년 4월), 2000억원 규모 자산을 보유한 자회사 렉스콘 흡수 합병(2014년 1월) 등으로 이어졌지만 두산건설은 끝내 경영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채 2016년 알토란 같은 이들 사업부문과 자회사를 대부분 매각했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에 1조6000억원 이상 자금을 지원했지만 오히려 이 여파로 2014년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 결과 두산중공업까지 자금난이 심각해지며 2020년 3월 채권단인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긴급 자금 1조원을 지원 받기에 이른다. 두산그룹 차원의 2차 재무구조 개선방안이다.
이후 두산중공업과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솔루스, (주)두산 모트롤BG, 두산타워, 클럽모우CC 등 알짜 회사들을 2조5000억원에 처분한다.
지난해 11월에는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건설 지분 54%도 큐캐피탈 컨소시엄에 258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두산중공업 등 두산그룹 전 계열사들이 살리려 했던 두산건설은 악몽으로 남은 채 두산그룹에서도 팔리는 처지가 됐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3월 두산건설 악몽을 지우려는 듯 두산에너빌리티로 사명을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두산건설 지분 46%는 이 두산에너빌리티, 옛 두산중공업이 쥐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 "두산건설은 이전 유동성 위기 당시 두산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가 최대주주였고, 자회사가 힘들면 최대주주가 지원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며 "만약 지원을 안해줘 두산건설이 부도가 났다면 더 큰 피해가 생겼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검찰이 주장하는 정자동 부지 매각에 따른 1775억원 매각이익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정자동 부지는 매각한 것이 아니라 리츠에 넘겨서 리츠로 운영하고 있다"며 "리츠의 대주주가 두산그룹 계열사들일 뿐 매각 차익을 챙기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두산건설은 이제 다른 회사에 완전히 매각된 상태로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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