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년 만에 무역 적자낼 듯…480억불 추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높은 수입물가 영향
공급망 훼손에 주요국 인플레이션 위기 격화
자국우선주의 내세우며 팜유·밀 등 수출 통제
美 '반도체 지원법' 등 G2 공급망 재편에 속도
"정부, 통상 변화 대응해야…기업과 소통 필요"
[세종=뉴시스] 이승재 옥성구 기자 =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자주 소개되는 문장이다. 그만큼 수출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당장 코로나19 위기를 겪었던 지난해 4%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황은 다르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역대 가장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수출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호무역주의와 주요국 패권 경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이 우리 수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다자주의 통상 시스템 붕괴에 적응하기 위한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우리 기업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도 요구된다.
◆수출 강대국 한국, 14년 만에 흑자 행진 끊긴다
4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수출액은 6445억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8%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입액도 처음으로 6000억 달러를 넘기면서 무역 규모는 1조2500억 달러까지 확대됐다. 이는 세계에서 8번째로 큰 규모이며 수출액으로만 따지면 세계 7위에 해당한다. 무역수지는 13년 연속 흑자를 내오고 있다.
올해는 무역 흑자 행진이 끊길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무역적자가 48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무역통계가 작성된 1964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무역 적자의 원인으로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높은 수입물가를 꼽았다. 한경연은 수입물가가 1%포인트(p) 오르면 무역수지는 8억8000만 달러 악화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 회복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훼손된 탓이다.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기를 겪는 중이다. 여기에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더욱 부각시키면서 이런 상황에 기름을 끼얹었다.
국제금융센터의 '최근 글로벌 공급망 차질 완화와 전망' 자료를 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는 2020년 말 1.63에서 2021년 말 4.31로 2.5배 이상 치솟았다.
또한 미국과 영국은 지난 6월과 7월 각각 9.1%, 10.1%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4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로존도 지난 8월(9.1%)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진혁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전 세계 해상 운송의 핵심 경로인 대만해협, 상하이항 여건이 악화될 경우 글로벌 물류난 재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공급망 차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말연시 일시적 수요 폭증으로 인한 완화 지연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차질 등으로 농산물 가격이 최근 상승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도 부담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에 속도..."기업 소통 강화해야'
최근 각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위를 가지는 자원과 기술을 무기화하는 추세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수출을 통제하는 경우도 잦다.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제한과 인도 자국 내 밀 공급 우선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 간 공급망 양분화 추세도 강해지고 있다. 앞서 미국은 '인플레 감축법' , '반도체 지원법' 등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 공급망 재편을 공언한 바 있다.
이러한 공급망 문제는 우리 기업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가운데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등은 미국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며 "이는 큰 틀에서 수출과 무역수지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를 갖춰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품목과 서비스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각 부처는 소관 산업에 대한 재정·세제·금융 지원 근거를 만들고, 별도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산업 공급망 위기경보 시스템 및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수출통제(대외무역법), 기술 유출방지(산업기술보호법), 외국인투자 안보심사(외국인투자촉진법) 등 3대 기술안보 정책을 재정비한다는 방침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뿐 아니라 다자주의 훼손에 따른 각국의 통상 정책 변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대기업은 발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세계 통상 환경 변화와 무역·투자 상대국 정책 변화를 미리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정부는 각국의 환경 변화에 대해 중소·중견 수출기업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기업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여러 건의 사항을 양자 협상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ussa@newsis.com, castlenin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