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잇따랐던 '교도소 내 행불자 암매장' 의혹 사실로
5·18 당시 3공수여단 주둔지, 민주투사 투옥·고문 현장
2019년 12월 무연고 묘지 이장 도중 유골 무더기 발견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묘지 개장 과정에서 발견·분류된 유골 중 1구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 행불자 발견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묘지에서 발견된 유골 중 1구의 유전자 정보(DNA)가 5·18행방불명자 78명 중 1명의 것과 일치한다는 감식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2구에 대해서도 유전자 정보가 일부 일치, 추가 발견 가능성도 있다고 조사위는 내다보고 있다.
5·18 당시 행불자가 옛 광주교도소 등지에 암매장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최초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옛 광주교도소는1980년 5·18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격전지이자 민주·인권 투사가 투옥돼 고문당하던 장소다. 5·18사적지 22호로 지정돼있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는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했다. 교도소 부근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1980년 5월21일부터 3공수여단이 머무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3공수여단은 담양·곡성 방면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국도 입구를 차단하고 시위 차량은 물론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차량에까지 총격을 가했다.
당시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항쟁 피해상황을 다른 지역에 알리고, 무기 획득과 지원자를 모집하고자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다가 총격을 당했다. 귀가 도중 무차별적인 진압을 당한 시민들도 있었다.
실제 1980년 5월 21일 담양군 대덕면의 한 마을 주민 2명은 광주에서 벽지를 구입해 돌아오는 길에 계엄군의 집중 사격으로 숨진 뒤 교도소 앞 고랑에 암매장됐다.
같은 날 오후 3공수여단은 전남대에서 포승줄로 붙잡은 시민군들을 트럭에 태워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던 중 최루탄을 터뜨려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5월 22일에는 트럭을 몰고 아내·막내딸과 함께 진도군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일가족이 광주교도소 근처 진입로로 빠져나가려다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3공수여단은 21일 오후부터 24일 오전까지 교도소에 주둔하다가 이후에는 상무충정작전 준비를 위해 20사단 62연대와 교대했다.
5·18 직후 교도소 관사 뒤편에서는 시신 8구, 교도소 앞 야산에서는 시신 3구가 암매장 상태로 발견됐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80년 5월31일 '광주사태 진상 조사' 문건에는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으로 민간인 27명(보안대 자료 28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16~17명의 신원과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소 52명이 교도소 내에서 사망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1989년 기무사령부 511분석반이 작성한 '광주교도소 사체 암매장 신고상황 종합검토보고'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7년)의 '면담보고서'에는 암매장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광주교도소로 이송된 중상자들이 의료 인력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사라졌다는 전직 교도관의 증언도 있었다.
5·18기념재단은 교도소 안팎 암매장 장소에 대한 증언 등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2017년 말 옛 광주교도소 안팎과 옛 상무대 인근 광주천변, 너릿재 등지에서 암매장 발굴 조사를 벌였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19년 12월 20일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 개장 과정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이 무더기로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류 작업을 거쳐 유골은 최종 262기인 것으로 파악됐다.
5·18조사위는 오는 11월까지 유골 100여 구에 대한 유전자 대조 작업을 마칠 방침이다.
한편 광주교도소는 1971년 북구 문흥동 10만6000여㎡의 부지에 건립, 2015년 10월 삼각동으로 옮겼다. 교도소 옛 터에는 놀이형 법 체험 테마파크인 '솔로몬 로(law)파크'가 조성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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