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국가대표로 이름 날려 이탈리아 진출
2002년까지 이탈리아 무대서 선수·감독 활약
배구 불모지 이란 지휘봉…아시아 최강팀 성장
국내 무대 복귀 후 현 최강팀 대한항공 조련
남녀 대표팀 부진에 "벼랑 끝서 추락 중" 경고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박기원은 1970년대 국가대표 미들블로커(센터)로 활약하며 이인, 강만수, 김호철 등과 함께 남자배구 전성기를 열었다.
박기원은 1970년대 국가대표 최장신으로 국제무대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키가 컸다. 부산 성지공고 3학년 때인 1970년 국가대표에 뽑힌 박기원은 1978년까지 태극 마크를 달았다.
197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배구 세계선수권대회가 박기원의 인생을 바꿨다.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박기원은 전지훈련 중 발목을 다쳐 목발을 짚은 채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신 강만수, 김호철, 강두태, 장윤창 등이 뛰면서 세계 4강에 올랐다.
박기원은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피네토 발리 유니폼을 입고 뛰었고 1982년 31세의 나이에 같은 팀 감독으로 발탁됐다. 지도자의 길로 접어든 박기원은 이후 2002년까지 무려 20년간 감독 또는 수석 코치로 남녀배구리그 12개 팀을 맡았다.
박기원은 이탈리아 반도 남단 레지오 칼라브리아부터 북단 스키오까지 전국을 누비며 '미스터 마지코'란 별명을 얻었다. 마지코는 이탈리아어로 마술사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 성공한 박기원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박기원은 51세가 된 2002년 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란의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6개월 앞두고 이란 대표팀 감독직을 맡은 박기원은 6개월 만인 12월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이어 은메달을 따내는 기적을 낳았다.
이란의 기대대로 박기원은 2003년 일본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예선에서 이란 배구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꺾어 또 한 번 영웅이 됐다. 박기원이 이란 배구장에 가면 온 관중이 기립박수로 환영했고 사인을 받으려는 인파가 박기원을 에워쌌다.
이란 생활을 마친 박기원은 2007년 한국 프로배구 무대로 돌아왔다. 박기원은 LIG 그레이터스 감독으로 부임해 선진 배구를 이식하려 했다. 거포 이경수 등 좋은 전력을 보유하고도 2%가 부족해 정상 길목에서 좌절했던 LIG를 위해 박기원이 나선 것이었다.
박기원이 이끈 LIG는 2009~2010시즌에는 1라운드에서 전승을 달리며 초반 돌풍을 주도했지만 2라운드에서 외국인 선수 피라타가 부상으로 결장한 이후 프로 상위 3강(삼성화재, 현대캐피탈, 대한항공)에 연패하면서 4위로 미끄러졌다. 결국 박기원은 2010년 2월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래도 한국 배구계는 박기원의 역량을 인정했다. 박기원은 2011년부터 4년 동안 남자 배구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다. 박기원호는 AVC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가능성을 높였지만 준결승에서 일본에게 져 동메달에 그쳤다. 반면 박기원이 키웠던 이란 대표팀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연속 금메달을 차지해 대조를 이뤘다.
박기원은 현대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이자 아시아배구연맹(AVC) 코치위원장, 국제배구연맹(FIVB) 기술 및 코칭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배구연맹은 지난 6월 박기원을 높이 평가했다. 연맹은 "FIVB 기술 및 코칭위원회의 박기원 위원은 선수와 감독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1970년대 두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고, 지도자로서 약 40년 동안 지내왔다"며 "그는 지칠 줄 모르는 혁신가"라고 평했다.
박기원은 1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좀 행복한 사람이구나 느낀다. 제일 좋아하는 배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며 "체육관에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 이 나이까지 할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햇다.
박기원은 한국 남녀 배구대표팀의 국제 대회 성적이 나빠지는 점을 걱정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면이 안 산다"며 "외국에 가면 '미스터 박, 한국 요새 왜 그러냐? 우리도 해볼 만 하겠던데'이란 얘기를 들으면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리그는 잘 되고 있지만 이것도 영원하지는 않다. 국제 대회 성적이 떨어지면 국내 리그 팬도 빠져나간다. 다른 종목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며 "지금 한국 배구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도 지났다. 벼랑에서 밀려서 추락하고 있다고 할 상황"이라고 짚었다.
박기원은 그러면서 대표팀 수준을 높일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닌데 다른 나라보다 배구계의 업그레이드 속도가 느리다. 이 상태에서 변화를 안 가져오면 재생 불가능한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어떻게든 이른 시일 내에 허심탄회하게 협회와 연맹, 배구인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헤쳐나갈지 정확한 계획을 세워야한다. 계획 없이 잘잘못만 따지고 있으면 재생 불능 상황으로 갈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