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쉴틈이 없다' 추석 연휴 사건사고 속출 제주 연동지구대

기사등록 2022/09/10 15:12:03

9일 밤~10일 오전 제주 연동지구대 동행

추석 연휴 첫날 가정 폭력에 주취자 속출

조사 어렵고 기억 못해 "취하면 답 없어"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전 제주시 연동의 한 술집에서 주취 폭력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2022.09.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33번 순마(순찰차) 출동합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연동지구대에 있던 경찰관들이 '주택가에서 살려달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주민 신고에 급히 현장으로 떠난다.

20만 명의 관광객이 입도할 것으로 예상된 올 추석 첫날이자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맞은 9일 밤, 눈코 뜰 새 없는 제주 연동지구대 야간 근무 경찰관들의 이야기다.

이날 밤 11시24분께 접수된 가정 폭력 사건 현장을 향해 출동하는 경찰관은 지구대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1팀 '에이스' 박준형 경사다. 그는 이날 강동우 시보 순경과 조를 이뤄 연동의 한 주택가 쪽으로 빠르게 순찰차를 몰았다.

박 경사는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3분 남짓한 시간에도 신고 내용을 토대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떠올린다고 했다.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빠르게 판단해야 하고, 그에 맞는 매뉴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위치한 주택이었다. 이 주택에서 술에 취한 남편이 부인을 심하게 폭행했다. 아내는 이웃의 도움으로 다른 곳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박 경사는 피해자의 집 안에서 술에 취한 앉아있는 가해 남편 A씨를 만났다. A씨는 경찰을 보자 순순히 자기 잘못을 고백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때렸고,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고도 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전 제주 연동지구대 경찰관들이 순찰 중 노상에 주취자가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귀가 조처하고 있다. 2022.09.10. oyj4343@newsis.com
현장에서 A씨의 범죄 이력 등을 조회한 박 경사는 그가 집행유예 기간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관련 절차를 설명한 뒤 A씨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차분했던 그의 모습은 지구대에 도착하면서 변해가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른 탓인지 A씨는 지구대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담배를 피우게 해달라고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그를 달래도 보고 경고도 해보았지만 술에 취한 사람 앞에서는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경찰서 관련 부서에서 온 직원이 데려가기까지 약 1시간 동안 행패를 부렸다.

전날 밤 11시26분께 현장에 도착한 박 경사는 진술을 정리하고 관련 조서를 작성하는 등 다음날 오전 1시가 돼서야 해당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한숨 돌리려던 찰나 112상황실로부터 신고를 알리는 전파가 이어졌다. 연동 번화가 일대에서 주취 폭력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현장은 북새통이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서로 다른 일행의 남성 2명이 시비가 붙어 난투극으로 이어졌고, 이를 말리는 술집 직원들과 일행들, 싸움을 지켜보는 수십 명의 인파들로 정신이 없었다.

난투극 당사자 1명은 머리 등에 출혈이 발생했다. 술에 취한 그는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경찰이 오고 나서도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등 화가 가라앉지 못한 상태였다. 출동한 119구급대원은 현장에 도착해 그에게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전 제주 연동지구대에서 경찰관들이 심야 근무에 나서고 있다. 2022.09.10. oyj4343@newsis.com
현장에 나간 경찰관들은 자신이 왜 조사를 받아야 하냐며 따지는 이들을 겨우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데려왔다. 주취자를 조사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라고 한 경찰관은 설명했다.

서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우기는가 하면, 분이 풀리지 않아 욕설과 고성을 지르기도 일쑤여서 소통 자체가 원활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을 진정시키는 건 온전히 지구대 경찰관들의 몫이다.

주취자들 대부분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 힘들뿐 더러 사건 당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이날 주취 사건의 경우, 술집 업주의 협조로 폭행 당시 CCTV 영상을 확보해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전 3시를 넘긴 시각, 연동지구대 한 경찰관은 취재진에게 "오늘은 한가한 편이다. 그제와 어제는 정말이지 바빴다. 완전 비상"이라고 말했다. 약 10분 후 그의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 사건이 발생했고, 1팀 경찰관들이 순찰차에 시동을 걸고 현장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연동지구대에선 날이 새기 전까지 사건을 알리는 전파가 이어진다. 이날 오전 5시를 넘어서 연동 시내 술집에서 또 주취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술에 많이 취한 주취자일수록 범행의 정도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사전에 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경찰관들은 입을 모은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전 제주시 연동의 한 거리에서 주취 폭력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상황을 제지하고 있다. 2022.09.10. oyj4343@newsis.com
순찰차 2대와 경찰관 4명이 출동해 제지에 나섰지만 시비가 붙은 주취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욕설과 주먹을 날리려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밀쳐지고 손톱 등에 긁힌 경찰관들은 계속해서 이들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양 측 모두 크게 다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아 현장에서 귀가 조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지구대로 복귀한 경찰관들은 다소 지친 모습이다. 12시간동안 총 40건의 가정폭력, 주취, 성폭력 등 다양한 사건이 접수됐는데, 일 평균 30건 내외로 사건이 접수되는 점에 비춰 이날은 피로도가 쌓일 수밖에 없다.

경찰 인력 중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치안 상황을 판가름하는 지구대 경찰관들은 매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oyj4343@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