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 휩쓴 지 한 달…고기교 주변 피해 주민들 "추석이 웬 말"

기사등록 2022/09/09 07:00:00 최종수정 2022/09/09 07:41:29

뽑힌 나무, 쓰레기…마을 곳곳에 당시 피해 흔적

"수해 복구하느라 추석 명절 챙길 정신 없어"

[용인=뉴시스] 이병희 기자 =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수해 흔적. 2022.09.08. iambh@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폭우로 물난리 난 지 꼬박 한 달 됐네요. 추석이 웬 말이에요. 한달 내내 복구했는데 아직 할 일이 태산이라 추석 명절 챙길 정신이 없어요."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수마(水魔)가 휩쓸고 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마을 곳곳에는 당시의 피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동천동은 지난달 8일부터 15일까지 534㎜의 폭우가 쏟아져 교량과 산책로가 무너지고 토사가 흘러내리는 등 38억 원(시 추산)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한 달 내내 주민들이 구슬땀 흘려 치운 덕에 마을은 예전 모습을 되찾았지만 도로 한켠에는 진흙이 쌓여 있었고, 뿌리째 뽑힌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천변 나무에는 집중호우에 쓸려 내려온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걸려 있었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석기천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고모(62·여)씨는 아직 다 치우지 못한 아래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폭우로 식당 아래층에 있던 4평 크기 냉장·냉동용 저장창고가 통째로 휩쓸려갔다. 겨우내 사용할 배추김치 500포기를 비롯해 보관해놨던 고춧가루, 무 등 식재료를 모두 잃었다.

고씨는 명절에도 가게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수해 복구로 영업을 한동안 못 했다. 보통 연휴에는 이틀 정도 식당 문 닫고 쉬는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해서 명절 내내 영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비싼 돈 주고 들인 저장창고와 값 오르기 전에 비축해놓은 식재료, 세탁기, 심지어 계단까지가 모두 떠내려갔다. 고물가에 야채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시점에 이런 일을 당해서 너무 힘들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용인=뉴시스] 이병희 기자 =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고기교 인근. 2022.09.08. iambh@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하천 범람으로 피해가 극심했던 고기교 인근에서도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 복구하지 못한 보건진료소는 진흙 냄새가 진동했고, 곰팡이 핀 바닥에는 집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주변 상가들도 바닥이 들뜨고, 벽지 군데군데 곰팡이가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마트는 범람한 토사를 치우고 새 물건을 들여 최근 영업을 시작했지만, '추석 특수'는 포기했다. 복구하느라 든 비용에 '마이너스' 신세다.

입구에 있던 상품과 집기는 모두 폭우에 휩쓸려갔고, 마트 안에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던 탓에 성한 것이 없었다. 떠내려간 냉장고는 저수지에서 찾아왔다.

사장 김모(55)씨는 깁스한 손을 보여주며 "떠내려가는 기계를 잡으려다 다쳤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신용보증재단에 가서 대출을 신청하고 왔다. 기계 수리비만 몇천만 원 들었고, 외상값에, 인건비에, 빚쟁이 신세"라고 한탄했다.

김씨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고 해서 지원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피해조사한 지가 언젠데 얼마를 어떻게 지원한다고 주민들에게 설명 하나 없다. 추석 전에는 뭔가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피해를 입은 사람만 불쌍하다. 일이 터졌을 때는 정치인들이 몰려와 사진 찍고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하더니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 없다"라고도 했다.
[성남=뉴시스] 이병희 기자 =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수해 흔적. 라일락밭이 흙으로 가득 차 있다. 2022.09.08. iambh@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석기천 맞은편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일부 주민도 수해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기교에서 석기천을 따라 3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 화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정모(58·여)씨 부부는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밤중 잠에서 깼을 땐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95세 노모를 모시고 간신히 높은 곳으로 이동했지만, 폭우로 길이 사라져 꼼짝없이 갇힌 상태로 3시간 넘게 119 구급대를 기다려야 했다.

화훼철인 가을을 기다리며 꺼내놓은 화분과 자재는 흔적도 없이 쓸려갔고, 정성껏 심어놓은 라일락밭은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썩어가고 있다.

정씨는 "추석이 다가왔지만 아직도 치울 게 산더미라 이런 집을 두고 어딜 갈 수가 없다. 간단하게 장봐서 식구들 먹을 음식 조금 할 생각이다. 어려운 시기라 장 볼 엄두도 안 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명절 전 지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주민들이 당한 고통을 알면 정부나 지자체가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용인 쪽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돼 지원한다던데 코앞이지만 여긴 성남이라서 지원도 다르다고 하더라"라며 씁쓸해했다.

아울러 "40년 넘게 여기 살면서 물이 넘친 건 처음이었는데 태풍 힌남노 소식에 새벽까지 한 숨 못 자고 뜬눈으로 지새웠다. 앞으로 비 올 때마다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수지든 상류 난개발 문제든 빨리 해결해서 안전하게 발 뻗고 잘 수 있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집중호우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등 7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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