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이승조 사후 첫 조명
기하학적 추상 30여 점 전시...10월30일까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기차 여행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얼핏 무언가 망막 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첫인상이 강렬한 사람에 대한 못 잊음과도 같은,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오늘의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
일명 '파이프 작가'로 불리는 故이승조(1941~1990)개인전이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처음 열린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을 구축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한다.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기둥 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이승조의 회화는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환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시각성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생전 “나를 ‘파이프 통의 화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로 원치도 않고 또 싫지도 않은 말"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프를 전제하지 않은 반복의 행위에 의해 착시적인 물체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현대문명의 한 상징체로서 등장시킨 것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엄격한 질서 안에서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 시각적 일루전(illusion), 기계문명을 화폭에 재현한 3차원적인 입체감이 생성되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이를 어디까지나 회화의 소재로서의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형의 기본원리인 규칙적인 반복의 질서를 통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말하는 ‘자기환원적 추상’, 다시 말해서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승조 화백 '파이프 형상'은 어떻게 나왔나
파이프 형상이 등장하던 1968년은 작가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제1회 '동아국제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으며 서양화 부문의 최고상이 추상화 작품에 수여되는 국전 역대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1971년까지 연달아 4회의 국전에서 수상하며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것이 더 어렵다”는 어록을 낳기까지 했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해방 공간기에 가족과 함께 남하해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을 거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62년에는 동급생이었던 권영우, 서승원 등과 함께 기존의 미술 제도와 기득권에 반하여 ‘오리진’이라는 이름의 전위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룹 이름이 시사하듯 ‘근원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모색하며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던 이승조는 1967년 최초의 '핵' 연작을 발표했다.
이승조의 가장 대표적인 모티프로 알려진 ‘파이프’ 형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4개월 후, '핵'연작의 열 번째 작품을 통해서였다. 마스킹테이프로 캔버스에 경계를 지정한 뒤 납작한 붓으로 유화를 입히는데, 붓의 가운데 부분에는 밝은 물감을 묻히고 양쪽 끝에는 짙은 색 물감을 묻힘으로써 각 색 띠의 한 면을 한 번에 그을 수 있었다. 색을 칠한 후 작가는 사포질을 통해 화면을 갈아 윤기를 내어 금속성의 환영을 더했다.
생전 이승조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아폴로 우주선 발사로 새롭게 우주의 공간 의식에 눈뜨고부터 시작한 작업이 작가인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아” 끊임없이 매진하고 있다고 소회한 바 있다.
훗날 유족은 “수학도 모르면서 속도와 확장성은 꿰뚫었던 사람”이라 소개했다. 기술문명의 현대화를 화폭 안에 소화해내며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이 화백은 그의 말년에 4m 이상의 폭에 달하는 대작을 그리며 자신의 우주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고자 했다. 전시는 10월30일까지.
◆이승조 화백은 누구?
이승조(1941~1990)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한 화가로, 모더니즘 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67년 처음 선보인 '핵' 연작으로 기하추상 화풍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이후 작고하기까지 20여 년간 일관되게 특유의 조형 질서를 정립하는 데 매진했다.
이승조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중앙대학교 회화과 등에서 오래간 교편을 잡았다. 전위미술 단체 ‘오리진’과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동인으로서 활약한 한편, 보수적 구상회화 중심의 국전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며 전위와 제도권 미술의 흐름을 뒤바꾸는 데 일조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바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토탈미술관, 독일은행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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