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월 '기관사칭형' 전화사기 전년 21%에서 늘어
위조·악성 앱 등 정교한 수법에 고학력자도 당해
[서울=뉴시스] 위용성 기자 = #. 서울에 사는 40대 A씨는 자신이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상대방은 이미 A씨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검사가 시키는 대로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하니 프로필에 검찰청 사진이 떴다. 검사는 카톡으로 공무원증도 보내줬다.
검사는 강압적인 목소리로 'A씨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자금세탁에 쓰였으며, A씨 앞으로 70건 정도의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톡으로 고소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검사는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 수사하겠다'더니,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라며 링크를 보냈다. 무심코 그 말을 따른 A씨의 휴대전화에는 악성 어플리케이션(앱)이 깔렸다.
검사는 범죄 연루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A씨에게 대출을 받아 실제 출금을 해 건네라고 요구했다. 범죄 연관성이 없다고 확인되면 돈은 전액 돌려준다고 했다. A씨는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고 예·적금, 보험, 주식도 남김 없이 깨서 현금을 마련했다. A씨가 돈다발을 들고 약속 장소로 가보니 이번엔 금융감독원 직원이라는 사람이 나와있었다. A씨는 이렇게 금감원 직원에게 40억원을 넘겼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올해 1~7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 가운데 기관사칭형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이 37%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21%보다 크게 증가했다고 23일 밝혔다.
작년까지 전화금융사기는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대출을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대출사기형이 79%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고액 자산가를 노리는 기관사칭형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실제 지난달 기관사칭형 범죄 피해액은 270억원으로, 발생건수가 더 많은 대출사기형(275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달에만 각 40억원, 10억원, 9억원 상당의 다액 피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체 전화금융사기 피해 발생 건수는 1만4197건으로 전년(2만402건)보다 30% 줄어드는 등 감소 추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처럼 다액 피해자를 양산하는 기관사칭형 범죄 비중이 늘면서 경찰청은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특히 기관사칭형 전화금융사기는 수사기관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들을 타깃으로 하고 워낙 수법이 정교해 의사·연구원·보험회사 직원 등 고학력자나 직업 관련성이 있는 피해자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 연령대를 보면 사회경험이 적은 20대 이하(67%)가 다수지만, 다액 피해는 주로 자산이 축적된 40대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대표적인 수법이 교묘하게 위조한 신분증을 제시해 피해자를 속인 뒤, 걸고 받는 모든 전화·문자가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연결되도록 하는 일명 '강수강발'(강제수신·강제발신) 기능 악성 앱을 깔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사기를 의심해 여러 기관에 확인 전화를 해보더라도 조직원들이 받게 된다. 수사기관이 영장도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접근해 돈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교한 수법에 속아 넘어가는 사례가 나오고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민 대부분이 전화금융사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1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며 "특정 사투리를 쓰는 경우는 아예 없고 전화번호 변작, 악성 앱 등 최첨단 통신기술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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