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우성 "친구가 너무 큰 부담 짊어지는 게 싫었는데…"

기사등록 2022/08/10 05:43:00

친구 이정재 연출작 '헌트' 주연 맡아

23년 인연 똑같이 영화감독으로 데뷔

"치열하게 했다…만족감 있는 결과물"

정우성, 이정재 출연 제안 4차례 거절

"정재씨가 너무 부담 커져 섭외 거절"

"결국 함께해…연출 부담 잘 이겨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아마 할리우드에도 이런 콤비는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영화 한 편을 함께 찍은 게 인연이 돼 친구가 됐고, 그 이후 20여년 간 같은 영화에 나온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는데도 가장 친한 친구로 긴 세월을 보냈다.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이 사업을 하고, 이런 저런 영화인들과 같이 어울린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슈퍼스타 콤비는 23년만에 한 영화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 영화의 성공을 위해 온갖 홍보 일정을 같이 다니고 있다. 이제 이들은 우스개소리로 '부부'로 불린다. 영화 '헌트'로 관객을 만나는 배우 정우성(49)과 이정재(50)다.

두 사람에게 '헌트'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이 주연을 맡았고,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아무리 영화가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공동작업이라고 해도 '헌트'가 이 콤비의 작품이라는 건 분명하다. 20대 청춘스타였던 두 배우가 40대 후반 50대가 돼서도 여전히 과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한국영화계에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최근 만난 정우성은 '헌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 재밌게 하자고 혹은 우리가 멋있게 나오려고 찍은 영화가 아니에요. 이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 영화의 의미를 퇴색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했어요.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이 판이잖아요. 우리가 생각했던 기준점을 넘겼다는 만족감은 분명히 있어요." 그러면서 정우성은 "우리가 23년만에 한 영화에 나온다는 것에 절대 도취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행보가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정말 모든 걸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배우 활동과 영화 제작 작업을 넘어 감독이 된 것까지 말이다. 정우성은 젊은 시절부터 연출에 대한 욕심을 수차례 드러냈다. 다만 이정재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도 앞선 인터뷰에서 "'헌트' 이전에 단 한 번도 연출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이정재 역시 연출을 하게 됐다. 이제 이들은 똑같이 배우 겸 감독이다.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제가 영화 '보호자' 연출하고 있을 때, 촬영 끝나고 집에서 정재씨를 만나면 항상 '그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그땐 본인이 연출을 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던 시기였죠. 그러다가 어느 날 '헌트'를 자기가 직접 연출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하라, 하지 말라 할 순 없는 일이죠. 그냥 웃겼어요. 저한테 죽는 거 아니냐던 정재씨가 이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으니까요."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정우성은 이정재의 출연 제안을 네 차례 거절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정재가 데뷔작으로 너무 큰 부담을 떠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정재가 연출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매우 큰 리스크가 있는데, 거기다가 자신까지 참여하게 되면 업계나 관객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올라가게 되는 걸 걱정했다. 친구가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또 같이 하게 됐다. 정우성은 "일이 그렇게 가더라"고 했다. "정재씨가 원하는 배우를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고,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땐 계란 두 개를 한 바구니에 담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터지더라도 가는 거였죠. 흥행은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최소한 욕 먹지 않을 정도의 만듦새로 해보자고 했어요. 이 얘기를 했던 날 많이 취했어요."

정우성은 자신이 해봤기 때문에 연출도 해야 하고 연기도 함께해야 하는 이정재의 고충을 잘 알았다. 올해 개봉할 예정인 영화 '보호자'에서 정우성 역시 연출과 연기를 같이 했다. 정우성은 그저 이정재 옆에 있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직접 위로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이에 형성된 공기와 분위기만으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걸 충분히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보면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정재씨가 그 부담감을 온전히 다 짊어지길 잘 견뎌내길 바랐어요. 지금껏 배우 생활한 시간이 있으니까, 역시 잘해내더라고요."

'헌트'는 약 20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주연 배우로서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순 없다. 정우성은 "어떤 작품이든 다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흥행은 운명이죠. 부담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영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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