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배우 김태훈(47)은 항상 새로운 캐릭터에 끌린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처음 극중 인물을 마주할 때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 끊임없이 고민해 다양한 매력을 끌어내려고 한다. 최근 공개한 온라인도영상서비스(OTT) 왓챠 드라마 '최종병기 앨리스' 속 미치광이 킬러 '스파이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 '앵그리맘'(2015) 등에서 악역을 맡았지만 결이 달랐다.
이 드라마는 킬러 '앨리스'라는 정체를 숨긴 전학생 '겨울'(박세완)과 비폭력으로 학교를 평정한 '여름'이 범죄 조직에 쫓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파이시는 자신이 키운 앨리스에게 배신 당해 광기가 폭발했다. 특히 앨리스가 쏜 총에 맞아 성 불구자가 되는 설정이 신선했다. 김태훈 역시 "전형적이지 않고 만화적인 매력이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귀띔했다.
"표현 자체가 훨씬 극까지 갔다. 웃어도 울어도 되고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해도 돼 매력적이었다. 성 불구가 되는 설정을 보고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싶더라. '얘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믿지 못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싶었다. 선생님으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 (앨리스는) 굉장히 애정하는 제자였고, 모든 것이 킬러로서 키워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고, 내 신체를 이렇게 만든 억울함에 미칠 것 같았다."
애초 스파이스는 더 극악무도했다. 사람을 마주치기만 해도 살인하고, 알몸인 상태로 찍는 신도 있었다. 대중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기에 수위를 조절하고 B급 정서를 조금 더 강조했다. 참고한 작품은 없었지만, 평소 좋아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감독 에단·조엘 코엔, 2008) 속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처럼 "공포감과 에너지를 줄 수 있었으면 했다"고 바랐다.
무엇보다 캐릭터 정당성을 고민했다. 이 인물이 왜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지와 관련해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섹시하고 카리스마있게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편했다"며 "에너지를 응축·절제해 표현하지 않았다. 극중 약을 먹고 환각상태 등 여러 상황 속에서 감정이 극과 극으로 오가지 않았느냐. 서성원 감독과 작업하면서 말로 많이 설명하는 부분을 줄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1997년 극단 한양레퍼토리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최종병기 앨리스는 회당 약 30분, 총 8부작이다. 60분 드라마 4부작인 셈이다. 스파이시 서사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앨리스를 어떻게 킬러로 키워냈는지에 관한 마음이 강력히 있어야 했다"고 짚었다. "다국적 어린 아이들을 킬러로 만드는 집단으로 묘사했다"며 "이 집단의 악랄성, 앨리스를 향한 집착 등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말로 내뱉기 불편할 만큼 잔인한 상상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감독님에게 ''서여름'(송건희)에게서 스파이시의 예전 모습이 느껴진다'고 얘기한 적 있다. 맞고 쾌감을 느끼는 게 정상적이지 않지 않느냐. 상황은 다르겠지만, 스파이시도 여름과 비슷한 유년 시절을 겪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름이 만나자마자 '졸려 보이세요'라고 했을 때 묘한 호기심을 느낀 것 같다. 스파이시의 또 다른 인물처럼 보였다."
기존의 킬러 역처럼 눈에 띄는 액션은 없었다. "작년에 드라마 '나빌레라'를 찍으면서 십자인대가 파열 돼 수술했다. 꽤 오랜 시간 절뚝거렸고, 액션스쿨을 다니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서 "그렇다고 액션이 줄지는 않았다. 스파이시는 고난도 액션을 잘하기 보다, 잔인한 행동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몸을 많이 쓰지 않아도 강력한 존재로 느껴지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이 드라마는 영화 '극한직업'(2019) 이병헌 감독이 총감독을 맡았다. 이 감독과 서 감독이 함께 극본을 썼다. "서 감독이 현장을 총괄했고, 이 감독과 소통한 적은 없다"며 "어느 날 산속 장면 찍는데, 모니터 뒤에 누가 계속 앉아있더라. '저분 누구시냐'고 했더니 '이 감독님'이라고 하더라. 반갑게 인사했지만, 서로 낯을 가렸고 모니터 근처에 안 갔다"고 회상했다. "극본은 서 감독이 많은 부분을 쓴 걸로 아는데, 여러가지 표현이 재미있었다"며 "평소 이 감독의 B급 정서도 좋아한다. 극한직업이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영화 '스물'도 새롭고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김태훈은 2002년 영화 '사귀는 사람 있니'(감독 김형주)로 데뷔했다. 수많은 작품에서 활약했지만, 배우 김태우(51) 동생인 점 외에 사생활은 알려진 게 없다. 심지어 결혼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아이가 둘 있다.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건 아닌데, 구체적으로 가족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며 "사생활이 공개되면 극중 연기를 볼 때 다르게 보지 않느냐. 그래서 SNS도 안 했는데, (최종병기 앨리스 트위터 블루룸 라이브를 한 뒤로) 트위터에 빠졌다"며 웃었다.
"항상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집착한다. 그렇다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될까?' '내 삶은 너무 평범해서 표현이 제한적인 게 아닐까?'라며 매일 집착 수준으로 고민한다. 연기하는 나를 관대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다. 좀 더 평범한데 훨씬 바보스럽거나 유약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예전에 어두운 분위기 멜로물을 찍은 적이 있는데, 여전히 격정적인 멜로도 하고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pla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