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기…빌라·중소도시 아파트 역전세 위험↑
보증사고 증가세…2018년 792억→2021년 5790억
보증보험이 최선이지만…나쁜임대인 알 방법 없어
아니나 다를까 계약 만기 시점에 집주인은 "최근 매매 및 전세 시세가 2년 전보다 하락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한다 해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으니 전세를 연장하든가, 이 집을 매수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했던 A씨는 결국 HUG에 대위변제(임대인을 대신해 임차인에 보증금을 지급)를 요청했고, 보증금 전액을 HUG로부터 돌려받아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집값 조정기에 진입하면서 흔히 '빌라'로 불리는 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깡통전세' 위험이 커지고 있다. 깡통전세란 전세보증금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집값을 넘어서는 경우를 뜻한다. 통상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80%를 넘어서면 깡통전세라고 본다.
계약 당시에는 깡통전세가 아니었더라도 집값이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전세금액으로는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렵고, 집을 팔아도 전셋값보다 적은 돈을 쥐게 되니 세입자는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높아진다.
더 큰 문제는 임대인이 보증금 돌려막기 식으로 여러 채의 집을 사서 '갭투기'를 하다가 집값이 떨어지는 경우다. 이 경우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보다 집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편이 집주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집이 경매로 넘어가 세입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보증사고'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HUG에 따르면 2018년 792억원(372건)이던 보증사고 금액은 2019년 3442억원(1630건), 2020년 4682억원(2408건), 2021년 5790억원(2799건)까지 확대됐다. 올해 6월 말 기준 3407건(1595건)으로, 연말까지 지난해 사고 규모를 넘어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세대 주택의 피해 규모가 가장 크다. 지난해 말 기준 3469억원(1641건)으로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아파트(1497억원, 699건), 오피스텔(567억원, 303억원) 순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세 모녀' 사건이 '갭투기' 보증사고의 대표적 예다. 모친과 두 딸이 빌라 500여채를 사들인 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사건이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외지인들의 투자가 많았던 지방 중소도시가 깡통전세의 위험이 높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광양(85%), 여주(84.2%), 이천(82.4%), 청주(80.4%)의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섰다. 매매가와 비슷한 가격에 전세를 끼고 무자본으로 갭투자를 하는 외지인 투자자들이 많은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것을 조언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집주인이 '나쁜임대인' 리스트에 올랐는데, 세입자는 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HUG 관계자는 "대위변제 후 구상채무가 남아있는 임대인에 대해서는 보증가입을 거절하고 있는데, 현재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나쁜임대인 명단이) 공개가 안 되고 있다"며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어 보증사고를 발생시킨 악성임대인의 명단을 공개하는 법안이 입법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부동산 직거래 커뮤니티 등에는 깡통전세 관련 문의글이 잇따르고 있다. 안전한 매물이 없어 몇 달째 발품만 팔고 있다는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들의 심리적 허점을 노리는 전세사기가 극성을 부린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시장에 양질의 전세 매물은 적은 상황인데 월세를 살면 주거하향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크기 때문에 악성 매물이라고 설명해도 '설마 나한테 사고가 터질까' 하는 마음에 계약을 강행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중개사는 "손님도 급하고, 중개사도 급하니까 계약을 서두르는 상황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며 "양질의 물량이 확보되는 것이 우선이고, 감독기구를 마련하고, 임대인 정보가 공개되면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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