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21세기는 철도의 시대라고 한다. 산업발전의 고도화와 전문화로 화물과 승객의 운송량이 급증하면서 도로와 항공 산업은 한계에 이르렀다. 이에 운송량이 방대하고, 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으며, 환경오염도 적은 철도 운수가 최근에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남북한 철도 연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철의 실크로드,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일대일로 등이 국내외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만일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계하는 유라시아철도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부산이나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 함부르크까지 단번에 갈 수 있게 된다.
한데 이 유라시아철도의 구상은 엄연히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손기정 선수는 부산에서 열차에 올라 압록강 철교를 넘어 시베리아철도와 연계하여 독일 베를린까지 갈 수 있었다. 고속철도 KTX만 하더라도 과거의 철도 노선을 바탕으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실상과 미래의 구상은 모두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자산의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책 '모던 철도'(책과함께)는 오랜 시간 동아시아 역사와 철도를 연구해온 김지환 교수가 철도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 근대사를 살펴본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전 해인 1904년에는 7월 29일 영등포역 부근에서 보부상들이 불에 달군 기와를 레일 위에 올려놓아 열차와의 충돌을 기도했다. 1904년 8월 27일 김성삼, 이춘군, 안순서 등 3명은 고양군에서 경의선 열차의 전복을 기도해 운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같은 해 9월 20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바로 다음 날 마포 산기슭에서 총살을 당했다."(8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안양역 의거」중에서)
"안중근의 의거가 일어난 하얼빈 역에 주목해보자. 여객과 물자를 운송해주는 철도는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수탈하는 유력한 통로였다. 일본도 한반도 침략을 본격화하려고 철도 부설에 착수했다. 기차역은 식민지 지배의 거점이자 수탈의 창구였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기차역이 의병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거나 소실되었다. 러시아 중동철도의 거점 역인 하얼빈 역이나 일본 남만주철도의 장춘 역은 바로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 지역, 나아가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수탈하기 위한 근거지였다."(9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중에서)
임진각 망배단에 전시된 증기기관차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을 달고 여전히 멈춰 있다. 한국전쟁 중에 피폭되어 탈선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 자리로 옮겨와 전시된 기차는 분단의 상흔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전쟁은 어느 한 순간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식민지의 질곡과 해방이라는 오랜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다다른 한 지점에 불과하다. 이 기차를 보면 일상의 평화로운 삶도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과거 민초들의 수많은 희생과 투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책에 담긴 근대화와 수탈, 저항이 담긴 철도 이야기를 통해 우리 역사의 질곡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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