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피난민 박마리나씨 "고려인들 한국 정착 지원을"

기사등록 2022/06/19 15:15:40

수원시지속가능협, 피난민 토크 콘서트...생생한 전쟁과 탈출 이야기

폴란드로 피신 뒤 비자받아 지난달 이모·사촌언니 사는 우리나라 입국

전쟁을 두 번이나 겪은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 박마리나씨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수원=뉴시스]이준구 기자 =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박마리나(37)씨는 두 번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 살던 지난 2014년 돈바스 내전이 시작됐다.

전쟁이 두려웠던 박씨는 도네츠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수도 키이우로 이사했다. 전쟁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을 무렵 또 한번의 전쟁이 발발했다. 남편의 생일인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그는 전쟁이 또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흘 뒤부터 거리에 총을 든 사람들과 탱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대피소로 가야 했다. 대개 1~2시간 만에 대피소에서 나왔는데, 어느 날 이틀 동안 대피소에 머물러야 했다.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박씨는 피난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딸을 데리고 5㎞ 넘게 걸어 기차역으로 갔다.

무작정 기차역에 도착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이모와 사촌 언니가 사는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한국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주셔서,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한국에 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난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아 아무런 준비도 못했다.

폴란드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비자를 발급받은 뒤 지난 5월 4일 가족과 함께 한국에 도착, 현재 생계비를 지원받으며 경기도의 한 도시에 살고 있다.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18일 수원시청 중회의실서 개최한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 토크 콘서트- 전쟁과 피난’에서 지난 몇 달간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던 박마리나씨는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부모님이 우크라이나 중부지방에 살고 계셔서, 그래도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화요일에 연락했을 때 전투기가 마을을 폭격했다고 말씀하셨다”며 “이웃사람들이 돌아가셨다고 했다”고 울먹거렸다.

이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동포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으로 피난 올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채예진 대한고려인협회 부회장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고려인동포들은 폴란드, 루마니아 등 주변국을 비롯해 유럽 각지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으로 피난 오는 동포도 다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은 전쟁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며 “피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난 17일까지 시민을 대상으로 국내에 피난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과 생필품을 모아 고려인지원단체 사단법인 ‘너머’에 전달할 예정이다.

고려인은 1860년 무렵부터 광복 전까지 농업 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 동원 등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에 이주한 이들과 그들의 친족을 이르는 말이다.

1937년 스탈린 시대 연해주 등지에서부터 강제 이주를 시작한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 17만 6000명, 러시아에 16만 8000여 명 등 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비롯한 구소련 국가에 49만여 명이 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1만 3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2022년 4월 현재 국내에는 고려인 2~3세 8만 1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출신은 259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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