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7~19일 열린 연극 '소프루'는 실제 포르투갈의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에서 40년 넘게 프롬프터로 일해온 크리스티나 비달이 올라 그 삶의 진정성을 고스란히 전했다.
포르투갈어로 '숨', '호흡'을 뜻하는 '소프루(Sopro)'는 대사나 동작을 잊은 배우에게 이를 일러주는 프롬프터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대사를 잊어버려 그 순간 멈출 위기에 놓인 배우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과 예술을 예찬하는 이 작품은 프롬프터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이에 대한 헌정이다.
속삭이는 대사에 따라 배우들은 프롬프터가 되고, 예술감독이 된다. 프롬프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자는 예술감독 이야기에 한사코 사양한다. 새하얀 팔을 내밀며 자신은 무대 뒤 그림자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객에게 자신이 박수를 받는 순간, 무대 위 배우가 빛나지 못한 것이며 자신의 일은 실패라고 말한다.
설득을 거쳐 이 연극이 만들어지기까지 두 사람의 대화를 풀어내면서, 프롬프터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대에 겨우 손가락 끝만 맞닿은 채 프롬프터 박스에서 처음 연극을 본 다섯 살 꼬마 비달. 실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된 허구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20살이 넘어 프롬프터가 된 순간, 배우들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삶,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예술감독과의 추억 등이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진다.
무대에 선다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엔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었던 짐을 털어놓는다. 배우의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대사를 알려줘야 하는 임무를 잊어버렸던 순간. 단 7행뿐이었다. 비달은 그 문장들을 소리내 읽는다. 그의 목소리가 이곳에서 처음 밖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퇴장하는 그의 등 뒤로 텅 빈 무대엔 찡한 먹먹함이 감돌았다.
한국에선 현재 찾아볼 수 없는 프롬프터는 전 세계적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라지는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존재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프롬프터를 무대 위로 끄집어낸 이 극은, 프롬프터만의 이야기가 아닌 잊혀가는 존재들을 돌아보게 한다.
"희생도 따랐지만 이 직업을 사랑해요. 극장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 없이 일할 수 없어요. 특히 연극은 모두의 애정이 필요하고, 그래서 44년을 일할 수 있었죠. 이 연극은 잊혀져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에요. 극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오마주죠. 사회도 마찬가지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그림자 속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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