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주'...그 뜨거웠던 민주주의 열망[박진희의 사진으로 보는 문화]

기사등록 2022/05/17 05:00:00 최종수정 2022/05/17 06:30:43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컬 '광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뮤지컬 '광주'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기획된 창작뮤지컬이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소시민들의 뜨거웠던 투쟁과 그들이 일궈낸 민주주의의 희망을 담아냈다.

지난 4월15일부터 5월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23차례 공연을 마치고 광주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다. 14~15일  4차례에 걸쳐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공연했다. 배우 이지훈, 조휘를 비롯해 신성민, 문진아, 김나영, 김아영, 김은숙 등 35명 배우들이 출연, 13인조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선율과의 멋진 하모니를 선사하며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제작된 감동의 무대를 다시 한번 사진으로 전한다.

Scene #1
'우리는 편의대' 선동, 교란의 특수 임무를 띠고 광주로 투입되는 편의대원, 사복으로 갈아입고 출전 준비를 한다.



◆Fact : 계엄군(공수부대)
5월 18일 오후 4시에 제7공수여단을 광주 시내에 투입. 제7공수여단은 시위 학생과 일반 행인들에게도 무차별 폭력 행사. 이에 학생들은 반발하며 광주 도심으로 옮겨가 시위를 계속했으나 계엄군이 곤봉과 대검으로 학생과 일반 시민을 가리지 않고 참혹한 살상 자행.
Scene #2
'그날이 올 때까지' 1980년 5월 16일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인 광주시민들. 길었던 암흑의 시대를 횃불로 밝히고 찬란한 자유 시대를 열망하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Fact : 5·18민주광장 분수대
1980년 5월16일 옛 전남도청 앞 광장(분수대)은 대학생, 시민들 수만 명의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민주화를 외친 ‘민주화 대성회’가 열렸던 곳이다. 당시 5·18민주광장 분수대, 상무관, 광주YMCA 등 옛 전남도청 일대는 시민들의 항쟁지이기도 했다. 항쟁지는 1996년 5·18사적지로 지정됐다.
Scene #3
'훌라훌라' 광주시민이 하나로 뭉쳐서 독재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게엄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총구를 겨누고 불을 뿜는다.




◆Fact : 작전명 '충정'
5월 21일 오전 전남도청과 전남대학교 앞에서 계엄군과 시위대가 대치. 전남 도지사는 헬기에 타고 확성기로 21일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철수시키겠다는 발표. 그러나 철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수세에 몰린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21일 정오 12시경 전남대 앞, 21일 오후 1시경 당시 전남도청 앞) 시작. 도청 집단 발포 이후,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에 위치한 전일 빌딩·수협·광주관광호텔 등에 올라가 조준사격. 이 날 광주시내 120여 개의 병원과 보건소·3개의 종합병원 등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 많은 사상자 발생.
Scene #4
'지키지 못한 약속' 1980년 5월 21일 집단 발포 후, 계엄군은 철수했고 시민군은 도청을 탈환하였다. 하지만 '봄이 가소 여름이 오면 다시 만나자' 약속했던 동지들은 죽고 곁에 없다. 그들을 기리며 노래하는 시민들. 노래의 끝에서 앞서 간 동지들의 뒤를 이어받기로 결심한다.




◆Fact : 광주 시민의 항쟁
5월 21일 집단 발포 오후부터 시민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 시작. 시민들은 전라남도 나주시, 화순군 지역에서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시민군 결성. 계엄군은 광주시 외곽으로 퇴각. 시민군은 21일 저녁 계엄군 물러난 전라남도 도청 점령.
Scene #5
'천불이 난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에 도청은 진압된다. 진실을 말하고자 도청에 남았던 시민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Fact : 광주 재진입 작전 '상무충정작전'
5월 27일 새벽, 군인 25,000명 투입한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 작전 '상무충정작전' 시작. 5월 27일 새벽 2시 광주 시내로 들어온 계엄군은 27일 아침, 전라남도 도청에서 끝까지 남아 항전하던 시민군 살상. 계엄군이 도청 점령하며 진압 작전 종료.
Scene #6
'임을 위한 행진곡' 40년이 흐른 어느 날.



◆Fact : 5·18 대법원 판결
"피고인들이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시국수습 방안의 실행을 모의하고, 모의할 당시 그 실행에 대한 국민들의 큰 반발과 저항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강력한 타격'의 방법으로 시위를 진압하도록 평소에 훈련된 공수부대 투입을 계획한 후, 이에 따라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진압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시위자들을 가격하는 등으로 시위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도망하는 시위자를 점포나 건물 안까지 추격해 대량으로 연행하는 강경한 진압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와 같은 난폭한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과의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함으로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그후 일부 시민의 무장저항이 일어났으며, 나아가 계엄군이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귀중한 국민의 생명을 희생하여서라도 시급하게 재진입작전을 강행하지 아니하면 안될 상황이나 또는 광주시민들이 급박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있다고도 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위를 조속히 진압하여 시위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계엄군에게 광주 재진입작전을 강행하도록 함으로써 다수의 시민을 사망하게 하였다." -1997년 대법원 판결문중에서-

* 사진은 지난 4월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언론 시연회의 주요 장면이다. 온라인 실황 공연은 오는 18일 오후 7시 네이버NOW와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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