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지원 광주시 '곤혹'…"사업 취지와 작가 의도는 달라"
"풍자의 미학, 민주 사회에선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져야"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 거리전시전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정권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대형 그림이 걸렸다. 행사 예산을 전액 시비로 지원한 광주시는 불똥이 튈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11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광주시지회 주관으로 이달 7일부터 30일까지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호명呼名 5·18거리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작품 중 '다단계(multistep)'에는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대통령과 각계 각층 인사, 이와 관련한 논란 등이 풍자 형태로 담겨져 있다.
5개의 층으로 나눠진 그림 가장 위쪽에는 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주요 정치인과 청와대 등이 묘사돼 있다.
차례로 이만희 신천지 교주 등 종교인, 박정희·전두환 군부 독재와 재벌, 조국 전 장관 등 야권 인사들을 형상화한 그림들이 이어져 있다.
작가는 작품 설명을 통해 '자본주의 계급도'를 모티브로 5개 층으로 묘사했다. 최상위층은 왕정 we rule you, 2번 층은 종교 we poor you 3번 층은 군인 we shoot you, 4번 층은 중산층 계급 we eat for you, 마지막 층은 we work for all.'이라고 표현 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42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의 참여 단체인 민미협 광주시지회가 초청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항쟁 42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만큼, 광주시는 거리 전시전에 '5·18선양사업 민간경상사업보조비' 명목으로 시비 2160만원을 교부했다.
보조금 신청서엔 사업 내용을 '2022년에 호명된 5·18 거리 미술전은 오월 정신의 현대적 계승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혐오시대를 직시하고 오월정신과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고 적혀 있다.
예산을 지원한 광주시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보조금을 지원한 민미협이 초청한 작가들의 그림으로 전시를 구성한 것으로 안다. 관련 법령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했을 뿐, 완성되기 전 작품 주제·내용을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보조금 지원사업의 취지와 작가 개인의 의도가 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42주년 5·18항쟁기념위 측은 "기념 행사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여러 행사를 운영하는 만큼, 민미협 주관 개별 행사는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일부 종교단체가 그림 내용을 두고 크게 반발하는 것 같다"며 에둘러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민미협 관계자는 "풍자의 미학이다. 보통 풍자를 활용한 작품은 서민적 혹은 반권위적 성격을 지니며, 직접 불만을 표시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며 "방식은 불편하겠지만 민주사회에선 공적 인물에 대한 풍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국가 중 대통령 풍자 그림을 그렸다고 논란이 되는 경우는 없다"며 "5·18 항쟁 직후 '살아있는 권력'이자 가해자인 전두환·노태우씨를 실명까지 거론하며 풍자했던 그림들이 걸렸던 거리전을 계승한 전시작이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주시는 앞서 2014년 9월 민중화가 홍성담씨가 제작한 '세월오월' 작품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전시를 불허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역 미술인들은 작품 검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특별전에 참여했던 일부 작가들이 작품을 철거했다. 이후 후폭풍이 거세게 일면서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는 사퇴했고, 광주비엔날레 혁신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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