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2016년 1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이용마 MBC 기자를 병문안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민주당은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두 차례 대통령선거와 총선 정책협약을 체결했지만 개정안 처리 약속은 미뤄졌다. 민주당은 지난달에서야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 발의를 마쳤다.
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지난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 대통령의 공약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이행 무산을 규탄하고 개선 법안의 즉각적인 처리를 촉구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날 "지난 3일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찰개혁 관련 법안들이 의결 공포되는 절차가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가 5년 전 공약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포함한 핵심 과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며 "약속 어음이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업 언론인을 우롱하는 문재인 정부의 처사와 민주당의 정치적 무책임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강력한 어조를 동원해서 비판하고 규탄한다"며 "문재인 정부 임기는 곧 종료가 되지만 민주당의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당론으로 발의한 이 법안에 대한 즉각 처리 절차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에는 "책임지라"며 "17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 책임을 회피한 결과가 대선 결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는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윤 당선인의) 그 약속을 증명하라"고 촉구했다.
◆5년 만에 완성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은?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파적 편향 보도 시비에 시달리고, 보도국은 정파적 분열을 겪고,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직업적 자존감 저하를 경험한다. 이 문제의 근본적이고 역사적 원인으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이 지적됐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촛불시위를 배경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기대와 달리 공영방송 독립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임기 말기까지 왔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 시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안을 냈고,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개혁안의 실천을 공약했다. 당시 공영방송 안팎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대한 선결과제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라는 공감대도 형성됐으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여야가 기합의한 개혁안을 바로 실현하지 않았다.
2016년 7월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국회의원 160명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KBS·MBC·EBS 공영방송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을 추천한다고 명시했다. 사장 임명 또는 해임 시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특별다수제'도 포함했다.
집권 후 청와대, 민주당, 방송통신위원회가 특별다수제에 의한 공영방송 사장 선출 방식이 한국 현실에 잘 맞지 않는다는 의견에 유럽 공영방송 모델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 문제는 해결동력을 잃고 논란 대상에 머물렀다.
2017년 방통위는 정책자문기구인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구성해 10개월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제작 자율성 제고 방안을 논한 끝에, 2018년 12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의견서 주요 내용은 국회 또는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KBS 이사 3분의 1 이상의 국민추천제 선출, 사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견 청취 의무화, 특별다수제 도입 여부 이사회 자율 결정 등이었다.
국회는 방통위 안을 이미 발의된 지배구조 개선안과 병합해 논의했으나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020년 5월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모든 관련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같은 해 7월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사회단체 31개가 참여한 연대단체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가 미디어 공공성 강화와 언론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인 '미디어개혁위원회'의 대통령 직속 설치를 요구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 민주당은 진일보한 개정안을 내놓았다. 정필모 의원이 내놓은 이 개정안에는 방통위가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 구성, 이들이 뽑은 후보 중 다득표순으로 KBS·MBC·EBS 이사 13명씩 선출, 공영방송 사장은 국민위원회가 투표로 추천한 복수의 후보 중 이사회가 특별다수제로 선출 등이 포함됐다.
언론현업단체들은 이를 환영했으나 당내에서는 적극적인 논의가 없는 가운데 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올해 3월 공영방송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여당이 4명, 야당이 3명, 방통위 전원이 동의한 2명, 방송·미디어 단체 2명, 사측이 1명, 교섭대표 노조가 1명을 이사로 추천하는 법안을 내놨다. 사장 선임 시 사장 후보 시청자평가위원회를 설치해 이사회가 추천하게 했다.
그렇게 대선까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은 정필모 의원의 개선안과 전혜숙 의원 개선안으로 압축됐다.
▲ 이달 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 처리될까?
그리고 마침내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이날 소속 의원 171명 전원이 이름을 올린 방송통신위원회법,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교육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KBS와 MBC, EBS는 이사회를 대신해 특정 성이 70%를 초과하지 않는 25명의 운영위원을 임명하게 된다.
운영위원 추천 권한은 국회(8명-교섭단체 7명, 비교섭단체 1명), 방통위가 선정한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3명), 시청자위원회(3명), 한국방송협회(2명), 종사자 대표(2명), 방송기자연합회(1명),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1명)가 갖는다.
여기에 KBS와 MBC는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에서 4명을, EBS의 경우 교육부에서 선정한 교육 관련 단체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2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임명된 운영위원들은 기존 이사회 업무 수행과 동시에 사장 후보자 임명제청권을 갖는다. 신설되는 '시청자사장추천평가위원회 설치와 운영' 조항에 따라 시청자평가위원회가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재적 운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이를 의결할 수 있다.
또 임명제청이 2회 이상 부결되는 경우엔 별도의 공론조사 방식을 통해 사장 후보자 임명제청을 하도록 했다.
이 법안 부칙에 기존 공영방송 이사들의 임기를 보장하는 내용도 있다. 법 시행 전에 임명된 이사는 운영위원으로 직책이 변경되며 이들 임기는 이사 임기 만료까지다.
추가로 임명해야 하는 운영위원은 이 법안의 추천 비율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위원 추천주체 간 협의를 거쳐 임명된다.
이 법안 발의에 대해 언론단체들은 환영하면서 4월 내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달 28일 성명에서 "늦었지만, 방송법 개정안을 환영한다"며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지배구조 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 언론은 그동안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온 해묵은 언론 개혁을 이뤄냄과 동시에 더 나은 민주주의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도 다음날 성명에서 "정치권 몫을 1/3 이하로 축소하고 학계, 시청자위원회, 지방의회 및 방송 관련 단체 추천이 포함된 것은 양당 독식 관행을 완화하고,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대안"이라고 평하면서 여야에 "공영방송법 개정안, 4월 안에 처리하라!, 거대양당은 공영방송 기득권 포기, 개정안 처리로 실천하라! 국회 과방위는 즉각 법안 심사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언론단체들이 처리 시한으로 못 박은 4월은 지났고 이제 문 대통령 임기도 1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4일 열린 언론현업6단체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양만희 방송기자협회장은 "민주당이 사실상 이 법안에 대해서 어떤 논의를 할지 일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론 발의라고 하는데 국회 과방위에서도 어떻게 논의할지에 대한 움직임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이것은 국민과 한 약속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나준영 방송영상기자협회장은 "2017년 대선 이후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이 후순위로 밀려서 지금까지 왔다"며 "이제 다시 이익 부분에 대한 공영방송 구성원들과 언론 종사자들의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민주당이 급하게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겠다고 하지만 우리가 지난주와 이번 주 봐왔듯이 검찰 수사권 분리 문제로 여야 대립이 커진 후 지방선거 치러지는 시점에서 민주당 이야기했던 것들이 지켜질지 굉장한 의문이 든다"며 법안 처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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