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에 대한 인식 바꾸는 주접이 풍년
"팬들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
팬덤 출연 요청 쇄도…국내외 스타 섭외 중
"우울증약 끊은 송가인 팬 기억에 남아"
늦은 입봉 부담감 多…자신 있게 밀어붙여
[서울=뉴시스]박은해 기자 = "팬들은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이제 정말 좋아하면 배려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지난 1월20일 첫 방송된 KBS 2TV 예능물 '주접이 풍년'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스타를 좋아하는 '주접단'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박미선, 가수 장민호, 배우 이태곤이 MC를 맡았다. 덕질을 시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사연을 통해 스타와 팬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연출을 맡은 편은지 PD는 팬의 주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팬이 스타에게 보여주는 애정, 스타와 팬이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보여주면 그들에 대한 반감도 불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이 슬로건이다. 방송 4개월 차에 접어든 시점, 스스로 처음의 목표는 절반 이상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주접이 풍년'은 팬과 스타, 출연자와 시청자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예능이다. 매회 스타와 팬이 출연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덕질에 얽힌 사연을 공개한다. 일반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편 PD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팬을 우습게 만들지 말자'였다.
"우리는 재밌고 따뜻하고 의미 있는 사연을 가진 팬을 찾아요. 그런데 우습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부 사람은 때때로 팬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독특한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엄청 재밌거나 신기하지 않아도 의미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자기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친 스타의 이야기를 하고, 직접 만나고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재미만 추구하려면 더 자극적으로 과한 모습만 부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팬들의 기행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요."
프로그램이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여러 팬덤의 출연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스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송이라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편 PD는 "많은 팬들이 '우리 주접력 장난 아니다' '제대로 보여주겠다. 우리 편을 기획해달라'고 요청한다. 스타들 역시 팬들과 함께 촬영하는 프로그램이 잘 없다. 자신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성이다. 에너지를 정말 많이 얻고 간다"며 "그룹 인피니트 팬들은 팬사인회에서 멤버들에게 우리 방송을 이야기했다. 그룹 하이라이트도 녹화 끝나고 무척 재밌었다고 SNS에 올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덕질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편 PD는 1회 가수 송가인 편에 출연한 팬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70대 남자 팬이 우울증약을 30년 동안 먹었는데 송가인 씨를 좋아하면서 점점 변했대요. 목판에 송가인 씨 노래 가사 새기는 것에 취미를 붙여 술과 우울증 약을 끊었다고 했어요. 나중에 목판 선물도 하고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더라고요. 약으로도 병을 잘 못 고쳤는데 덕질하면서 고쳤다고, 녹화장에도 목판을 들고 와 응원 도구처럼 들었어요."
제작진은 팬들의 문화를 직접 알아보고 섭외를 진행한다. 편 PD는 다양한 팬덤을 자세하게 조사하면서 팬덤 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좋아하면 맹목적으로 가까이 닿고 싶었던 예전과 달리 요즘 팬들은 '거리두기'를 중시한다.
"요즘은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면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옛날에는 집 앞에서 기다리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아요. 가수 박서진 씨 팬들은 서진 씨가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 타는 걸 알아요. 그래서 좋아하는데도 가까이 안 오더라고요. 녹화장에서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구조인데 불편할까 봐 일정한 거리를 지켜줘요. 멀리서 응원하고 먼저 사진 요청도 하지 않더라고요. 가수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단체 행동이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가수를 따라 릴레이 기부하는 팬들도 많아요. 선행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알아요."
소수 팬덤을 위한 기획도 준비 중이다. 편 PD는 "아직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스타라도 극소수 팬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신청한다면 멋지게 담아내고 싶다. 생애 최초 팬미팅도 생각 중이다. 대형 팬덤은 아니지만 소수가 의리 있게 지켜온 팬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소개할 생각이다. MC 박미선 씨도 30년 넘게 활동했지만 팬들과 정식으로 만나는 자리가 잘 없었다. 그런 분들이 은근히 많은데 스타와 팬의 다양한 만남을 주선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주접이 풍년'은 편 PD의 입봉 프로그램이다. 동기들 중 늦은 입봉인데다 일반인 대상 예능이라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쏟아지는 우려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팬의 주접'이라는 독특한 기획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검증되지 않은 일반인 여러 명을 이끌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회사에서도 걱정이 많았다. 주인공을 연예인으로 바꿔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래도 자신 있다며 꿋꿋이 밀고 나가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고 회상했다.
가수 임영웅은 2회 방송에 아쉽게 출연하지 못하고 팬들의 이야기만 다뤘다. 임영웅이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한 시점, 편 PD는 그와 팬들을 다시 섭외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영웅시대(팬덤) 에너지가 정말 좋았다. 최근 임영웅 씨 편에 출연한 팬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온 가족이 TV에 출연해 너무 좋았고, 시어머니와 같이 나왔는데 더 밝아졌다고, 본인은 성덕이라고 했다. 상황상 이유로 2회에는 출연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외 스타들을 섭외하기 위해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언급한 그룹 방탄소년단, 가수 조용필부터 해외 아티스트까지 폭넓게 가능성을 열어뒀다. 편 PD는 "트위터에서는 그룹 세븐틴 팬들의 요청이 많다. 하이라이트 편 방송 후 여러 아이돌 팬덤의 관심이 높아졌다. 배구 선수 김희진씨 팬덤 이름이 주접단이라 우리가 나가야 된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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