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콜라이우 탈출' 고려인 남매 등 어린이날 체험 참여
제기 차기·딱지 치기·투호 등 전통놀이 체험에 큰 관심
고려인 가족 50여명 문화전당·호수생태원서 추억 쌓아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평화로운 한국에서 첫 어린이날을 보내니 새롭고 즐거워요."
100번째 어린이날인 5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 문화축제장에는 특별한 주인공들이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고국의 품에 안긴 고려인 어린이 리유라(14)군, 리안나(10)양 남매와 나스쟈(14)양, 리막심(10)군.
유라 군 일행은 새롭게 사귄 또래 고려인 친구들과 함께 이날 광주 나들이에 나섰다.
유라·안나 남매를 비롯한 이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고향인 미콜라이우를 떠나 지난 3월 21일 고국의 품에 안겼다.
유라 군 일행은 '광주 사랑해요'라고 적힌 풍선을 들고 축제장에 들어섰다. 낯선 광경에 한동안 어색한 듯 여기저기 부스를 돌아다니던 유라 군은 대형 미디어아트 전광판(Media wall)을 가리키며 관심을 보였다.
유라 군은 자신의 대부의 아들인 막심 군을 세심히 챙기며 축제장 곳곳을 둘러보다 '제기 차기' 체험 장소에서 발길을 멈췄다.
막심 군이 제기를 1번 차는 데 그치자,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던 유라 군도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유라 군도 제기차기를 시도하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발 안쪽으로 차는 방법을 일러주자, 이들은 제기를 서로 1~2번씩 주고 받으며 웃음을 되찾았다.
이들은 '딱지치기' 체험도 익숙한 솜씨로 함께 즐겼다.
놀이 구경만 하던 여동생 안나 양도 투호 체험에는 큰 관심을 보이며 직접 참여했다. 힘껏 던진 투호가 빗나가자 수줍은 미소로 오빠 유라 군에게 들고 있던 투호를 건네기도 했다.
비록 40분 남짓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라 군 일행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뛸 듯이 축제장에서 나왔다.
유라 군은 "한국이 마음에 들고 편하다. 오늘 같은 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쁘다"며 "고향에 남아있을 친구들이 그립지만 한국에 와서 좋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는 "평화가 찾아 온다면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영어 교사를 하고 싶다. 만약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받고 싶은 어린이날 선물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특별한 나들이를 인솔한 이지현 바람개비꿈터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은 "가장 전쟁이 치열한 시기에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온 아이들이다. 전쟁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 비교적 빨리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아 다행이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에도 비슷한 '어린이 보호의 날'이 지정돼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 같다"며 "유라 남매에게는 오늘이 사실상 생애 첫 어린이날이나 다름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광주시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를 비롯한 고려인 어린이를 위해 '시티 투어' 특별노선 버스를 마련했다.
바람개비꿈터 지역아동센터 소속 유라·안나 남매 등을 비롯한 고려인 어린이, 가족 등 50여 명은 이날 국립아시아문화전당·호수생태원 등지를 돌며 각종 체험 활동에 참여하며 어린이날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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