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침공 당시 만난 러 재벌 절반 해외로 자산 빼돌려"

기사등록 2022/05/04 13:15:25

WP, 판도라의 문건 분석해 러 재벌 역외자산 조명

전문가 "푸틴, 역외자산 관행 묵인하고 재원 챙겨"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AP/뉴시스]2021년 7월 31일 이고르 세친(왼쪽) 로스네프트 CEO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레닌그라드 지역 라도가 호수의 코네베츠 섬에 있는 코네프스키 수도원을 방문하고 있다. 2022.03.17

[서울=뉴시스] 김지은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러시아 재벌 수십명을 불러 침공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와 러시아 내에서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재벌의 상당수는 수년 동안 그들의 부를 러시아 밖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2월24일 러시아 기업가 37명과 크렘린궁에서 만나 "이번 침공은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그들이 직면할 경제제재를 암시하면서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초청된 사람들은 모두 러시아 경제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뱅크의 헤르만 그레프 회장,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인 가즈프롬뱅크의 회장인 안드레이 아키모프, 러시아 최대 독립 석유회사 루크오일의 회장 바기트 알렉페로프 등이 포함됐다.

14명이 억만장자 순위에 올랐고, 석유와 가스, 은행, 화학과 같은 국가의 주요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모였다고 외신은 설명했다.

푸틴이 직접 나서 챙길 정도로 러시아 경제의 정점에 있는 기업인들이지만 이들의 자산은 해외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WP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지난해 내놓은 금융 기밀문서인 '판도라의 문건(Pandora Papers)'을 분석한 결과 푸틴과 회의에 참석한 37명의 재벌 중 절반 이상이 역외회사(Offshore company·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유령회사)와 연결돼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크렘린 회의 참석자나 가까운 가족 중 적어도 21명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키프로스 또는 재정 비밀 및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기타 섬 관할지역에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수년 전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역외회사는 푸틴의 동맹국들을 처벌하기 위해 서방이 채택한 최근의 경제 제재를 무산시킬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고 WP는 짚었다. 크렘린 회의에 참석한 기업인들 중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영국, 유럽연합이 부과한 제재 대상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푸틴이 수년 동안 공개적으로 역외자산을 경고하고, 역외회사의 사용을 조세 회피와 돈세탁과 연관시켰지만 조용히 관행을 묵인하며 뒤에서 재원을 챙겼다고 비판했다.

경제 연구에 따르면 1조 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재산이 역외회사에 묶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는 러시아 재벌이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정적 부가 러시아 내 전체 러시아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만큼 많다고 보고 있다.

줄리아 프리드랜더 전 CIA 분석가는 "푸틴은 자신의 측근들이 국영기업과 국가 자체의 재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며 "그 돈은 종종 해외까지 간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kje132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