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부울경 특혜 안돼"…마지막까지 윤석열 공약 맹비난

기사등록 2022/05/03 05:00:00 최종수정 2022/05/03 06:02:41

산은 부산 이전 재차 반대…"부울경 스스로 자생해라"

'맏형' 자진 사퇴에 타 국책은행장 거취도 주목

[서울=뉴시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일 열린 '산업은행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사임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2.5.2. (사진= KDB산업은행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가장 특혜받은 지역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다. 알짜 산업이 다 집중돼 있는데, 다른 지역은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뺏어가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장이 마지막까지 '작심 발언'을 쏟아내며 사임을 공식화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임 배경 등에 대해 밝혔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산은은 은행인 동시에 정책금융기관임으로 정부와 정책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 직무 수행하는 것이 순리라고 평소 생각해 왔다"며 "그런 의미에서 새정부 출범에 맞춰 사임의사를 전달한 것이지 다른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그간 이 회장의 사퇴를 예정된 수순이라고 봐왔다. 역대 산은 회장들도 새정부 출범과 함께 사의를 표명해온 것이 관례였고, 더군다나 이 회장의 경우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과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산은 회장으로 임명돼 연임에 성공한 역대 4번째 산은 수장이기도 하다.

또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의 전기 만화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건배사로 "가자!(민주당 집권) 20년!"을 제안하는 등 국책은행장으로선 걸맞지 않게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내 거센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측과 사사건건 부딪히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회장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

뿐만 아니라, 최근엔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인사를 두고 인수위 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인수위는 금융위원회가 산은에 유관기관에 대한 임기말 인사를 중단하라는 지침을 두 차례나 보냈음에도, 박 대표가 선임된 배경에는 이 회장이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 회장은 윤 당선인의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작정한 듯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부산 이전이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이뤄지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며 "잘못된 결정은 불가역적인 결과와 치유할 수 없는 폐해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은의 부산 이전으로 부·울·경 지역에 2조~3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란 주장이 있는데 학자로서 보기에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라며 "국가 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마이너스 효과는 무시하고 있는데, 이런  황당한 주장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가장 많은 특혜를 받은 지역은 부·울·경"이라며 "기간산업 등 알짜 산업이 다 집중돼 있는데, 다른 지역은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뺏어가고 있다"고도 발언했다. 그는 "제2금융중심지를 자처하는 부산은 뺏지만 말고 다른 지역을 도와줘야 한다"며 "제2금융중심지에 맞게 스스로 자생하려는 노력 좀 해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쌍용자동차와 대우조선해양 매각 무산 등 잇따른 매각 실패에 따라, '산은 무용론'과 '책임론' 등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이 회장은 "산은이 지난 5년간 한 일이 없다는 비난은 산은에 대해 잘 모르면서 하는 맹목적 비방"이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하는 3300명 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산은은 합리적인 구조조정 원칙하에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3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맏형 떠난다"…타 국책은행에 줄사표 이어지나

이처럼 국책은행들의 '맏형'격인 산업은행 수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한국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타 국책은행들에도 '줄사표' 행렬이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기관장들의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먼저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의 경우 임기까지 채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방 행장의 임기는 오는 10월 말까지로, 남은 임기가 6개월에 불과하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비교적 정치적 성향이 옅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임기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인선이 마무리된 다음 산은 행장과 수출입행장 인선이 이뤄진다"며 "그렇게 되면 방 행장의 임기가 한두 달밖에 남지 않을 텐데, 굳이 정치색도 거의 없는 인물을 교체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경우 전망이 엇갈린다. 윤 행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점 등에서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앞서 2020년 1월 취임 당시 노조를 중심으로 '낙하산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노조는 한 달 가까이 윤 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갔고, 그는 최장기간 출근을 저지당한 은행장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낙하산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

또 디스커버리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인 기업은행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됐음에도, 피해자 보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윤 행장에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윤 행장이 임기를 제대로 마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한편으론 윤 행장의 임기가 내년 1월2일까지로 잔여 임기가 그리 길지 않은데다, 그간 기업은행 수장이 정권 교체에 따라 바뀐 적은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예정대로 임기를 마무리할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냈기에 친정부 성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윤 행장 역시 관료 출신이고 이전 이명박 정부에서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일했기 때문에 친문 인사로만 보기에도 무리는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권 교체기 때마다 반복되는 공공기관장 교체 논란은 '소모적 정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전날 간담회에서 "정부 교체기마다 정책금융기관장 교체와 관련된 잡음이 나오고 흠집잡기, 흔들기 등이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이며 "소모적인 정쟁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임기와 정책금융기관 임기를 깨끗하게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며 "중요정책기관을 선별해서 2.5년, 5년 등 정부 임기와 맞추고, 나머지 기관들의 임기는 존중하는 것이 선진적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행과 같이 독립성이 필요한 기관은 당연히 임기를 보장을 해야 하나, 정책기관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곳"이라며 "수장의 자리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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