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뇌출혈로 쓰러져 3년째 투병
코로나19 감염증 후유증으로 폐렴 앓아
빈소는 춘천 호반병원 장례식장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사랑하는 그대여, ‘끝까지 버텨내어’ 아름다운 인생을 꽃을 피우십시오"
'존버(존재하기에 버틴다)'를 주창하던 소설가 이외수씨가 25일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76세.
2015년 출간된 책 '뚝' 이외수 '존버 실천법'을 통해 눈물, 슬픔, 고통의 진흙에서 힘차게 떨치고 일어나 이제 그만 ‘뚝’ 하고, 끝까지 버텨내라고, ‘뚝’ 신공으로 '존버'하라고 조언해 젊은층 사이에서 '존버' 인사법이 유행했다. 공동 저자인 허창수씨가 '고통 없이 살 수는 없을까요?” 질문에 “문제 되는 모든 것 다 허망한 것이니 모든 문제가 문제 아닌 줄 알면, 문제가 없다. 뚝!”이라며 일갈한바 있다. 당시 그는 위암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또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이별의 슬픔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음에는 달달한 위로 대신에, "그 고통과 슬픔으로 이제 시인이 되어야 할 때"라고 상황을 정리하기도 했다. 의외의 단순한 '존버 실천법'을 전수하며 "오늘도 투병 중 이상 무. 그리고 존버."라고 외쳤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후 7시 40분께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져 3년째 투병해왔다. 올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았다. 지난 22일 이외수의 장남 이한얼 감독은 고인이 폐렴으로 사흘째 응급실서 사투 중인 근황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한 바 있다.
1946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춘천교대에 입학했으나 1972년 중퇴했다. 같은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로 당선된 그는 3년 뒤인 1975년 중편소설 '훈장'으로 잡지 '세대'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공식 등단했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며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던 고인은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발표하는 작품마다 기발한 상상력과 파격적인 소재로 '기인', '괴짜'로 통했다.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로 1978년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1년 발표한 장편소설 '들개'에서는 두 남녀가 문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며 다 쓰러져 가는 교사(校舍)에서 1년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7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괴물'에서도 왼쪽 안구가 함몰된 장애인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악마적 본능을 추적한다. 그 밖에도 '장수하늘소', '장외인간' 등의 소설을 펴냈다. 마지막으로 출간된 장편소설은 지난 2017년작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소설 외에도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에세이 '하악하악', '청춘불패' 등을 펴낸 그는 2009년 7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올랐으며, 2010년 인터넷서점 예스24가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도 제7회 한국의 대표 작가 1위에 올랐다. 2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에서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소설은 40~50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고인은 '존버' 창시자이자 '트위터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고인은 에세이 '하악하악'에서 '존버'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며 '존버 정신' 창시자로도 큰 화제가 됐다. '존버'는 ‘존재하기에 버틴다’ 등의 줄임말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끝까지 버티자, 혼자서 버티지 말고 함께 버티자”는 대국민 문화 캠페인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2019년 출간한 에세이 '불현듯 살아야겠다고 중얼거렸다'에도 ‘존버’라는 신조어의 창시자답게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몸부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세상에 대한 분노, 뼈아픈 자기반성과 고백을 서슴지 않았다.
투병 전까지 트위터에서 정치적 이슈에 대한 글을 남기며 주목받은 고인은 팔로워 170만명을 거느려 소위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 문제부터 2016년 김진태 전 의원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말에 "백만 국민의 함성을 무시하려는 막말"이라며 "요즘은 모두들 건전지 촛불 쓴다"고 맞선 비판 발언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1월 투병 중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고인은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과도 인연이 깊다. 춘천에서 30여년간 지내던 고인은 2006년 강원도 화천군이 마련해 준 '감성마을'로 이주해 투병 전까지 집필 활동을 했다. 고인이 입주한 뒤 감성마을은 명소가 돼 그를 찾으러 오는 독자들이 한 때 400명에 달하기도 했다.
2019년 부인 전영자씨와 결혼 44년 만에 졸혼을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부인은 고인이 쓰러지자 제일 먼저 달려와 병간호에 매달려 고인의 곁을 지켰다.
유족은 부인 전영자씨와 아들 한얼, 진얼씨가 있다. 빈소는 강원도 춘천시 호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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