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S.E.S·핑클 시작된 K팝 걸그룹 계보
2세대 소녀시대·원더걸스·카라, 한류의 시작
3세대 트와이스·블랙핑크·레드벨벳, 확고한 팬덤
4세대, 선배들의 장점 끌어안고 데뷔 때부터 완성형
보이그룹 못지 않은 상업적 힘 자랑
팀 숫자 측면에서도 보이그룹을 능가한다. 에스파·있지·스테이씨·아이브가 선봉에 섰고 최근 주목 받는 케플러와 엔믹스를 비롯 에버글로우·위클리·체리블렛·퍼플키스·라잇썸·빌리·하이키 등이 만만치 않은 도전장을 내놓았다.
2018년 데뷔해 이미 글로벌 팬덤을 굳힌 (여자)아이들과 이달의 소녀(이달소), 지난해 '세븐틴'(SVT) 소속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로 영입된 프로미스나인의 경우 분류 기준에 따라 3.5세대로 영역 또는 4세대에 포함되기도 한다.
여기에 글로벌 수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의 첫 걸그룹으로 2일 데뷔하는 르세라핌 등 데뷔를 앞두고 있는 4세대 걸그룹들 역시 쟁쟁하다.
이밖에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 역시 또 다른 신인 걸그룹 론칭을 준비 중이다.
1세대 때만 해도 걸그룹은 성공한 보이그룹의 동생이라는 수식을 듣고 데뷔했다. H.O.T와 젝스키스 데뷔 이듬해 각각 데뷔한 S.E.S와 핑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두 팀은 보이그룹 못지 않은 팬덤을 보유하며 여성 그룹의 파워를 알리기 시작했다. '킬러' '겟업' 등의 히트곡을 낸 베이비복스 역시 1세대 대표 걸그룹 중 하나다. 이 팀은 S.E.S나 핑클처럼 소녀가 아닌 여전사 이미지를 내세워 차별화에 성공했다. 디바 역시 베이비복스와 같은 계열이 그룹이었다. 이밖에 청순한 이미지를 내세운 밀크, 슈가, 클레오, 써클 등도 1세대 걸그룹으로 통한다.
이밖에도 역대 걸그룹 중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는 평을 듣는 에프엑스(f(x)), 멤버들의 개성과 감기는 음악이 시너지를 내며 인기를 누린 투애니원(2NE1)을 비롯 미쓰에이, 씨스타, 포미닛, 애프터스쿨, 시크릿, 걸스데이, 에이핑크, 헬로비너스 등 2010년대 초반까지 데뷔한 2세대 걸그룹들은 다양한 개성으로 무장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2016년 이화여대의 학내 시위 현장에서 투쟁가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지면서 아이돌이 단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넘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만든 지점도 2세대 걸그룹의 공로다.
트와이스와 블랙핑크는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서 각각 3위와 2위를 차지하는 등 북미 시장에서도 주가를 높이고 있다. 레드벨벳은 두 팀과 비교해 해외 차트 성적에서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 발매한 앨범 '더 리브 페스티벌 2022 - 필 마이 리듬'이 'K팝 클래시컬함의 가장 근삿값'이라는 평을 듣는 등 다양한 콘셉트로 호평을 듣고 있다.
이밖에도 오마이걸, 마마무, 우주소녀, 브레이브걸스, 드림캐쳐, 여자친구, 러블리즈, 에이프릴 등 3세대는 저마다 확고한 마니아 층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에스파 멤버 카리나와 윈터가 '한류 개척자' 보아를 비롯 소녀시대 태연과 효연, 레드벨벳 슬기와 웬디 등 소속사 SM의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어벤저스 프로젝트 걸그룹 '갓 더 비트(GOT the beat)' 멤버로 무대에 설 만큼 역량도 이미 입증 받은 것이다.
사실 그간 K팝 업계에서 걸그룹은 상업성보다 인지도라는 인식이 컸다. 각 기획사 역시 수익 등의 측면보다 걸그룹을 통한 회사 지명도 등을 확보하는데 신경을 썼다. 하지만 이건 옛말이 됐다.
블랭핑크 외에도 요즘 웬만한 지명도 있는 걸그룹은 앨범 50만장 판매가 거뜬하다. 인기 보이그룹 못지 않다. 특히 데뷔를 앞둔 르세라핌이 2일 발매하는 첫 미니앨범 '피어리스'는 선주문량 38만장을 돌파했다. 음원판매량에서 이미 보이그룹들을 제쳤다. 최근 음원차트만 봐도 아이브, (여자)아이들, 레드벨벳, 에스파 같은 팀들이 강세다.
콘서트를 통한 흥행력도 자랑하고 있다. 트와이스는 최근 일본 도쿄돔에서 사흘 연속 콘서트를 열어 15만명을 모았다.
해외 굵직한 음악 축제들도 K팝 걸그룹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에스파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 미국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메인 무대에 섰다.
남녀 구분 없이 걸그룹에 매력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팬질하는 문화는 이미 굳어졌다. 성별이 아닌 아이돌 그룹 그 자체로서 매력을 느끼고 좋아한다는 얘기다.
트와이스 팬덤 '원스(once)'에 속한 30대 회사원은 "여돌은 특히 공항 패션이나 브이앱에서 소개해주는 뷰티 아이템들을 손민수(웹툰 '치즈 인 더 트랩' 등장인물인 손민수가 주인공 홍설을 따라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따라한다'는 뜻) 하기도 좋아서 더 유심있게 보기도 한다"'면서 "그들의 멤버별 관계성을 보는 재미가 있다. 남돌도 덕질 해봤지만 여돌의 관계성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걸그룹을 같이 좋아하는 신혼부부 '모모네'의 아내는 "어릴 적부터 항상 걸그룹 음악을 듣고 안무를 따라하면서 즐거웠다. 마치 내가 같은 멤버인 마냥 들으면 너무 신나고 행복했다"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오는 걸 보니 제 일상이라고 해도 되겠다. 연애 때부터 그런 모습을 봐오던 남편은 이제는 함께 걸그룹 덕질의 파트너가 됐다"고 말했다.
라이벌이던 S.E.S와 핑클 모두를 좋아해 1장에 300원이던 개인·단체 사진을 마구 골라집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서울 직장인(33)은 "요즘도 여전히 걸그룹들의 노래와 무대를 사랑한다. 스트레스 만병통치약, 출근길 에너지 충전, 신나고 싶을 때, 여행가는 길에 기분 좋을 때 나는 걸그룹 노래를 듣는다"고 말했다.
"그들의 에너지가 나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 노래를 듣고 무대 영상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빠졌던 에너지가 채워지고 나도 모르게 발로 리듬을 맞추고 있다. 아마 고단한 하루하루 속 작은 중독일지도 모르겠다"면서 "오늘도 나의 출근길 반복 재생곡은 엔믹스의 '오오(o.o)'"라고 덧붙였다.
'아이돌 전문 기자'인 박희아 대중문화 전문 저널리스트는 "보이 그룹 시장은 방탄소년단 이후로 그만큼 대중적인 인정을 받는 팀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 오히려 더 국내와 해외 반응이 극명히 갈리는 경우가 늘었다. 이에 반해 걸그룹은 사운드적으로나 퍼포먼스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부분에서 여전히 접근성이 좋다"고 짚었다.
"아이브처럼 Z세대의 정체성을 음악과 퍼포먼스에 완성도 높게 반영해서 인기를 끄는 팀도 나오고 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대중적으로 꾸준히 어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회사들도 걸그룹에 투자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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