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명예범죄·가부장적 관습 남아"
"귀국시 위험 처할 수 있어" 난민 인정
[서울=뉴시스]신귀혜 기자 =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본국의 가족들로부터 위협을 당한 파키스탄인 유학생 부부가 2심 법원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명예살인 등 가부장적 규범으로 인한 문제에 처한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재판장 심준보)는 A씨, B씨 부부와 이들의 자녀 C씨가 인천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에서 지난 19일 1심과 달리 원고 승소 판결했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서울의 한 대학 유학생이었던 A씨는 2016년 3월 파키스탄에 잠시 머무르던 사이 지금의 아내인 B씨를 만났고 곧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B씨의 가족은 종족과 신분이 다르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이들은 곧 B씨의 가족들로부터 위협에 시달렸다. 두 사람의 혼인신고 사실을 안 B씨의 가족이 'A씨를 해치겠다'며 B씨를 위협한 것이다.
실제 B씨 가족들은 가출한 B씨를 회유해 집으로 불러들인 뒤 '더러운 여자'라며 욕설을 하며 폭행을 가했다. B씨의 삼촌은 A씨에게 수시로 '가족을 끝까지 찾아내 복수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B씨 가족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B씨의 가족이 경찰에게 뇌물을 준 뒤여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이들 부부는 2016년 8월 A씨가 유학하던 한국으로 다시 입국했고 이후 파키스탄에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혼인 등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상황은 난민협약이 규정한 '박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방 또는 쌍방 가족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종족과 사회계급(카스트)이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넘어 생명, 신체, 성적 자기결정권 및 결혼의 자유 위협 등 차별이 발생한다면 이는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는 혼인의 자유와 혼인 상대방을 결정할 자유가 포함된다"며 "이와 관련해 의사에 반하는 일을 강요당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봤다.
그러면서 파키스탄 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부장적 관습·명예살인 범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종족 등이 다른 여성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여자'로 간주되는 파키스탄 상황을 고려했을 때 B씨 가족의 위협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전통·관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또 "수사·사법기관이 부패함은 물론 명예살인 범죄를 관습적 행위로 묵인하는 사례가 다수이고, 범죄 발생 건수도 크게 줄지 않았다"며 "이들이 파키스탄에 입국해 행정기관에 거주지를 등록한다면 가족들로부터 추적당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 B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면서 "자녀도 명예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며 인도적 필요에 따라 이들의 자녀인 C씨의 난민 지위도 함께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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