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국면과 맞물려 국내 게임산업이 새로운 급변기를 맞고 있다. 기존 게임사업의 수익모델과 생태계론 더 이상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우리 게임산업의 저력이면 메타버스 등 미래 신시장 선점에 유리한 입지를 점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공존하면서 어느 때보다 신사업 진출이 활발하다. 달라진 게임산업의 지형변화와 주요 기업별 신사업 전략을 알아봤다.
[서울=뉴시스] 오동현 기자 = "게임은 현재 모든 플랫폼에 걸쳐 가장 역동적인 엔터테인먼트 분야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가 역대 최고액인 81조9000억원을 쏟아부어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하며 밝힌 말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는 게임이 메타버스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중심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MS의 블리자드 인수를 기점으로 메타버스와 NFT(대체불가토큰) 측면에 우리나라 게임 산업에 대한 가치 재평가와 투자가 활발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는 K-게임의 미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며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각각 1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국내 게임업계 수장들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 P2E(Play to Earn: 돈 버는 게임),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 진출 등 신사업에 관심을 적극 표명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매출 성장이 둔화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이 글로벌 블록체인 게임 시장에서 위기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미 블록체인 게임 시장에 진출한 넷마블, 위메이드, 컴투스홀딩스 그룹, 카카오게임즈, 네오위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자체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내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을 발행하고, 게임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자사 게임뿐 아니라 타사 게임에 문호를 개방해 새로운 블록체인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도 준비 중이다. 초기 메타버스 산업은 게임 산업에서 확산 동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 자체가 가상공간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외에도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게임에 접속해 서비스를 공유한다는 점, 유저간 아이템 거래와 게임 내 경제시스템을 구축한 경험 등 메타버스 구현에 유리한 측면이 많아서다.
'제2의 디즈니'를 꿈꾸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인기 게임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영화, TV, 웹툰 등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에서 수익 창출을 꾀하는 것이다.
넥슨은 '마블'로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 감독의 스튜디오 'AGBO'에 투자해 지분 40%를 확보했다. 스마일게이트는 미국의 배급사 소니 픽쳐스와 손 잡고 '크로스파이어' 영화로 헐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소재로 한 단편 영화를 공개했다. 엔씨소프트는 '유니버스'라는 글로벌 팬덤 플랫폼으로 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황금알 낳던 시대 저물고 'P2E' 대세
지난 2020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던 국내 게임사들의 최근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국내 이용자들에게 '과도한 과금 회사'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점도 추가 성장을 막는 요소 중 하나로 지적된다. 그 중심에는 '확률형 아이템'이 있다. 한국 게임산업의 주요 수익 모델이 '확률형 아이템'으로 일원화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블록체인 게임은 게임사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다. 게임사 입장에선 확률형 아이템으로 고착화된 수익 모델에서 탈피해 NFT 아이템 거래 수수료나 암호화폐 거래 수수료 등으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고, 이용자 입장에서는 게임을 즐기며 획득한 재화나 아이템을 가상자산(코인)으로 전환해 돈까지 벌 수 있어 '일석이조'다.
그동안 게임사에 귀속됐던 게임 아이템 소유권을 이용자들이 갖게 되면서 자유롭게 게임 아이템을 팔아 현금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엑시인피니티'라는 P2E 게임은 소득 수준이 낮은 동남아나 남미 일부 지역에서 돈벌이 수단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NFT 전문 분석 사이트 '논펀저블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엑시인피티니는 34억9000만달러(약 4조3000억원)의 거래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블록체임 게임 산업에서 거래된 NFT 중 ⅔를 넘어선다. 지난해 NFT 시장의 총 거래액은 170억달러(약 21조원)였는데, 이 중 블록체인 게임 시장이 차지하는 거래 규모가 51억8000만달러(약 6조4000억원)에 달했다.
현재 글로벌 블록체인 게임 시장은 국내 게임사들이 공략하기에 적기로 보여진다. PC나 모바일 게임에 강점을 보이는 국내 게임사들과 달리 미국·일본·유럽의 게임사들은 콘솔 시장에 사업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데 문턱이 높다. 콘솔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블록체인 게임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글로벌 블록체인 게임 시장의 중장기적 전망도 밝다. 논펀저블닷컴은 블록체인 게임 시장이 향후 4년 내로 연간 10%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6년 블록체인 게임 시장 규모를 250억달러(약 31조원)로 추산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게임 시장 규모가 약 250조원으로 추산되는데, 블록체인 게임 시장이 전체 시장 규모의 10%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국내 게임 규제 환경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P2E 게임을 사실상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어서다. 현재 게임산업진흥법에서는 '경품 등을 통한 사행성 조장', '게임물의 이용을 통해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경품·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성인용 아케이드 게임 '바다이야기'와 P2E 게임을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다. P2E 역시 게임을 통해 얻은 재화를 현금으로 환전하는 시스템이기에 사행성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나트리스의 P2E 게임 '무한돌파삼국지 리버스'가 국내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를 지켜본 국내 게임사들은 먼저 글로벌 시장에서 P2E 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서비스 중인 국산 P2E 게임은 위메이드의 모바일 MMORPG '미르4', 컴투스의 실시간 모바일 전략게임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이 있다. 이 외에 다수의 게임이 한국·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사업 다각화해도 게임의 본질인 '재미' 놓치지 말아야
"P2E 게임도 결국 재미가 있어야 한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의 말이다. 게임의 본질인 '재미'가 없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은 "P2E 게임이 아무리 'Earn'(수익)에 초점을 둔다 해도 게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게임성이 없으면 새로운 모습의 채굴장이나 다름 없는 셈"이라며 "게임사들이 P2E 게임을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라면 돈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해서 게임성을 높이고, 수익을 유저들에게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엑시인피티니'가 대표적으로 재미없는 P2E 게임에 속한다. 재미보다는 수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게임 행위가 돈 벌이를 위한 노동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게임사들은 '게임성'을 강조하며 P2E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넷마블은 게임 본연의 재미를 중심으로 블록체인의 순기능을 결합하는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메이드는 P2E 라는 용어 대신 'P&E(Play and Earn)'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며 재화를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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