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보안요원 시장에게 전화해 항복 요구
거절하자 한달여 집중 포격한 끝에 점령
탈출 버스마저 공격해 민간인 살상
거리 지나는 주민 발가벗겨 휴대폰 검사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이례적으로 동부 소도시 이지움을 포위한 채 5주 동안 파괴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현지시간) 발레리 마르첸코 이지움 시장과 우크라이나군, 주민들이 전하는 5주 동안의 러시아공격에 따른 참상을 상세히 전했다.
지난달초 마르첸코 시장에게 한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 딱 한가지 질문한 했다. 이지움을 포위한 러시아군과 언제 항복협상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항복한다면 러시아군이 도시와 4만 주민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르첸코 시장은 전화한 사람이 러시아 보안요원으로 제안내용이 사실이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메르첸코 시장이 "난 우크라이나 도시의 시장이다. 이 도시는 우크라이나 도시로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가 답했다. "도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도시를 완전히 파괴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
이후 며칠 동안 러시아 전투기와 중화기가 도시를 폭격해 잿더미로 만들었다.
최근 이지움시 당국자들과 군인들, 시민들이 러시아군의 "초토화 작전"에 대해 증언했다. 우크라이나 군당국은 전면적인 파괴가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전체를 장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가 러시아 침공의 주요 목적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키이우 지역에서 철수해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주민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하고 겁주고 있다.
이지움의 우크라이나군은 남동쪽 50km 떨어진 전략요충 슬로뱐스크로 진격하려는 러시아군과 몇 주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우크라이나 군당국은 러시아군이 계속 남하해 슬로뱐스크와 도네츠크 지방 주도인 크라마토르스크를 점령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움은 7일 러시아군에 점령돼 이 지역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는 기본 거점이 됐다고 우크라이;나 군당국자들이 말했다. 아직 이지움에 남아 있는 주민들과의 통화와 문자로 러시아군이 잔혹성이 확인되고 있다. 이지움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르고 있는 잔혹행위는 전쟁범죄의 또다른 증거가 될 전망이다.
주민들은 기아, 대규모 약탈, 강제 이동 등을 증언했다. 이 지역 사정을 잘아는 러시아 지원 반군들이 조직적으로 지역 활동가 및 지도자, 경찰관,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체포하고 납치하고 있다고 전한다.
지난달 3일 러시아 전투기가 미사일로 도심지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상점가와 주거지를 로켓과 대포 공격이 하루종일 공격했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한 8명이 숨졌고 중앙병원이 크게 부서졌다. 이후 수백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도시를 탈출했다.
아직 가족이 시내에 남아 있는 비탈리(31)는 러시아 전투기가 폭격한 장소에서 300m 떨어져 있었다. 그의 아파트 건물이 크게 흔들렸고 벽에 걸린 가족 사진이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정말 겁이 났다. 모든 것이 흔들거렸다"고 했다. 그는 부인과 10살 난 아들과 함께 이웃들이 가득 대피해 있는 지하실로 뛰어갔다.
야포 공격과 공습으로 수도공급시설, 발전소, 가스 공급 시설이 파괴됐다. TV 중계탑이 무너지고 무선전화 중계탑이 손상돼 도시 많은 지역이 외부와 차단됐다.
시의회 의원 막심 스트렐닉은 "이게 저 야만인들의 전술이다. 시 운영에 필요한 민간 시설부터 파괴해 인도주의 재난을 만들어 시민들이 공포와 절망에 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주거건물, 공장, 학교, 새로 지은 2곳의 병원이 무차별적 공격으로 크게 파괴돼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장 사진엔 한때 사람들이 붐비던 거리에 커다란 분화구가 생기고 건물들이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 보인다. 현지 당국은 도시의 80%가 파괴돼 무너지지 않은 주택이 몇 채 안남은 것으로 평가했다.
소련 시절 "소비에트 광장"이었다가 공산주의와 결별을 상징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 "존 레넌 광장"을 러시아군이 포격해 비틀즈 그룹 유명 가사 "평화를 시도하자"라는 문구를 지워버렸다. 광장 주변 아파트 건물이 사람이 살 수 없게 됐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았던 우크라이나 정교회 교회가 파괴됐다.
한달 동안 이어진 포위와 현재의 러시아군 점령 동안 현지 당국자들은 소식을 궁금해하고 도시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달라는 문자 요청을 수천건씩 받았다.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은 가족들을 구해달라고 절박한 호소를 받았다. 지난달 4일 한 시의원이 받은 문자는 "불이 났다", "갇혔다" 등이었다.
비탈리는 "매일 매시간, 러시아군이 갈수록 더 심하게 공격했다.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해 상황이 어떻게 돼 가는지 알 수 없었다. 탈출하려 했지만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고 했다.
지역 당국자들이 인근 도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수천명을 탈출시키기 위해 버스를 동원했으나 러시아군이 대포와 로켓으로 계속 공격했다.
지난 달 9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을 궤멸시키기 위해 집중 폭격을 가해 왔다. 가스와 전기가 끊어진 상황에서 비탈리는 우크라이나군이 심한 폭격을 피해 도착한 아파트 입구에서 장작을 피워 요리했다. 군인들이 소형 버스로 시민들을 대피시켰고 비탈리와 가족들은 1분도 안걸려 탈출할 수 있었다.
비탈리는 "막 요리를 끝냈는데 국토방위군 미니버스가 다가왔고 군인들이 타라고 했다.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고 준비도 없이 누구도 짐도 챙기지 못한 채 버스에 올랐다. 돈도, 신분증도 없이."라고 했다.
3월14일 러시아 기갑부대가 시 탈출구를 대부분 차단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돌파해 마지막 남은 탈출로를 위협했다. 러시아 탱크가 버스 한대를 파괴하고 안에 탄 시민들을 살상한 뒤 모든 탈출이 중단됐다.
그날 마르첸코 시장이 지방 군사당국으로부터 탈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모두가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3월15일부터 식품, 의약품, 식수 공급이 끊어졌고 주민탈출 시도가 실패했다고 마르첸코시장이 밝혔다. 전기와 난방, 수도, 식품 공급이 끊어진 채 한달을 버티끝에 지금은 고갈됐다고 했다. 남아 있는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한 여성이 3월 29일 스트렐닉 시의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운신을 못하는 85살 어머니가 홀로 갇혀 있어 굶주리고 있다고 했다. 여성은 "어머니가 생감자를 먹어왔는데 그마저도 바닥났다.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마지막 희망이다.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점령군이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했다.
탈출한 사람들이 남은 가족을 탈출할 수 있게 러시아군과 교섭하는 걸 도와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문화진흥단체에서 일하는 남편이 시내에 지난달 29일 러시아군에 억류됐다며 "어떻게 협상할 수 없을까"라고 묻는 문자도 있었다. "남편을 죽일 것같다. 벌써 풀려나야했다. 할수 있지 않느냐. 제발"이라고 돼 있었다.
최근 러시아군이 전파방해를 하면서 시내 소식이 뜸해지고 있다. 전기가 끊어져 휴대폰 충전도 불가능해졌다. 러시아군인들이 주민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전하는 걸 의심하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아 엄동설한에 발가벗기곤 한다고 지역 당국자들이 전하고 있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는 시 외곽과 인근 도시로 옮겨갔다. 우크라이나군 유리예 코체벤코는 "러시아군 공격은 초토화작전이다. 기본적으로 이지움과 인근도시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는 포격과 폭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전투기 몇 대를 격추하고 대전차무기로 러시아 장갑차를 파괴하는 등 반격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군이 새로운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최근 점령한 이 도시에서 민간인 저항을 무력화해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시내에 남은 주민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최근 남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르첸코 시장이 교체됐으며 "당신들이 버려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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