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대 러 신흥재벌 예전만큼 권력·영향력 크지 않다

기사등록 2022/03/22 12:52:23 최종수정 2022/03/22 14:54:42

1세대 올리가키들은 서방에 많은 자산을 보유하지만

푸틴과 관계 밀접한 2세대들은 서방과 관계 깊지 않아

[서울=뉴시스]미 재무부가 3일(현지시간) 제재 대상으로 발표한 러시아 최고 부호 우스마노프가 보유한 세계 최대 요트 딜바르호. 총배수량 1만6000t인 이 요트에는 헬리포트 2개와 세계 최대 실내 수영장 등이 있다. (출처=미 재무부 홈페이지) 2022.3.4.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올리가르히(신흥재벌)라는 단어는 권력과 돈으로 정치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돼 있다.

러시아의 경우 소련 붕괴 이후 부를 구축한 재벌들을 가리키는 말로 러시아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올리가르히 정치는 과두정치를 뜻한다. 옥스포드 사전에 "올리가르히(oligarch)"라는 단어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 특히 옛 소련 붕괴 이후 부유하게 된 러시아 사업가"라고 정의돼 있다.

올리가르히라는 말은 그리스 어원을 가진 단어다. 소수라는 뜻의 oligoi와 통치한다는 뜻의 arkhein이 합쳐진 단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리가르히가 부패한 목적 달성을 위해 독재권력을 행사하는 소수 특권층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귀족 정치의 타락한 형태를 말한다.

그는 "올리가르히는 부유한 사람이 정권을 장악한 경우를 가리킨다"라고 썼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올리가르히라는 단어가 새롭게 부각됐다. 서방국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주변의 러시아 재벌들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미 워싱턴포스트(WP)가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올리가르히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러시아 부호들은 여러층으로 된 호화요트와 뉴욕 및 런던의 호화 부동산 등 고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 광산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 비료 및 석탄 사업가 안드레이 멜니첸코 등이 그들이다. 이탈리아는 이달초 회전식 침대와 4만달러(약 4885만원)짜리 수도꼭지가 달린 멜니첸코의 초호화요트를 압류했다.

일부에선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이 21세기 들어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러시아에는 올리가르히가 구세대와 신세대로 나뉜다.

1세대 올리가르히는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할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면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고르바초프 후임자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민영화를 추진했고 러시아를 계획경제에서 자유시장경제로 빠르게 바꾸었다. 옐친 등은 가격과 재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빠르게 풀었다.

정부가 소형 식당부터 대규모 석유기업까지 모든 국영기업의 지분을 매각했다. 이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지만 규칙과 관례, 규제기관이 없었던 탓에 "왜곡된 초기 자본주의"가 형성됐다.

러시아 1세대 재벌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 당시 러시아 유권자들은 민영화를 "움켜쥐기"로 비꼬았다.

1세대 재벌들은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이 아니다. 정유공장, 광산, 공장 등을 국가로부터 값싸게 사들여 큰 이윤을 남기고 재매각했다.

아브라모비치는 국영 석유회사 시브네프트를 1995년 경매를 통해 2억5000만달러(약 3051억원)에 사서 10년 뒤 정부에 130억달러(약 15조8665억원)에 팔았다.

그러나 푸틴이 2000년 집권하면서 1세대 올리가르히의 시대가 끝났다. 푸틴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이어받지 않았으며 신흥 재벌의 등장을 용인하지 않았다.

푸틴은 러시아 금융권력을 장악하고 자신만의 올리가르히를 만들었다. 2세대 올리가르히가 그들이다.

1세대와 달리 2세대 올리가르히는 러시아에 더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서방세계와의 통합에 큰 관심이 없다.

이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 푸틴과 오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익성이 좋고 경쟁이 없는 분야에서 국가와 거대 독점계약을 맺었다. 2018년 푸틴은 러시아와 크름반도(크림반도)를 잇는 40억달러(약 4조8832억원) 규모의 교량건설을 건설재벌 아르카디 로텐베르크에게 맡겼다. 그는 푸틴의 어릴 적 친구로 유도 대련 상대다.

둘째, 푸틴 시대에 성장한 기업인들이다. 푸틴이 주요 국영회사들의 경영을 맡긴 사람들이다.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사 회장 이고르 세친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이달초 세친 소유의 86m 길이 호화요트 아모레 베로(이탈리아어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호를 압류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도 세친을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

세번째는 강경 국방담당자들이다. 보안 및 군사의 강경파들로 푸틴이 국가보안국(KGB) 요원일 때부터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전통적 의미의 올리가키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들중 일부는 국방산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러시아 부호들 모두가 러시아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부를 소유한 사람은 국가의 주목을 받게 된다. 권력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생존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유럽에서 호화 요트를 보유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올리가키라고 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직후 호황기 때 큰 돈을 번 악덕자본가 정도가 비교할 만한 대상이다.

그러나 미국에도 올리가르히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본부장 폴 매너포트가 탈세와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됐었다. 재판 도중 판사는 변호사들이 매너포트를 후원한 우크라이나 재벌을 올리가르히라고 부르지 말도록 지시했었다.

판사는 변호사들 기준에 따르면 소로스나 코크 등 미국 정치 기부자들도 올리가키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들을 올리가르히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지적했었다.

그러나 미 다트머스대 사회학과 브룩 해링턴 교수는 "미 대통령과 재벌 출신 각료들이 권력을 사용해 부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막는 법률이 없다"면서 "그들이 시민들을 위해 자신들의 특권을 제한하도록 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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