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하르키우의 참상…"도시 위해 싸우다 죽는 게 낫다"

기사등록 2022/03/18 18:36:07 최종수정 2022/03/18 19:04:43

학문·예술·젊음의 도시에 들이닥친 전쟁

민간인 500여명 사망…일상 잃은 시민들

행정청사, 광장 등 문화역사 유산 파괴도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포격 피해를 입은 유치원 교실의 전경. 2022.03.1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하은 기자 = 러시아군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는 인구 150만명이 사는 예술과 문학, 학문의 중심지이자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쳤던 곳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하르키우의 지난 21일간의 참상을 담은 기사를 게재했다. 잘못 없는 민간인들이 전쟁으로 어떻게 일상을 잃었는지를 기사는 낱낱이 보여준다.

◆젊음의 도시에 들이닥친 전쟁

지난 2월 드미트로 쿠즈보프씨는 헤드폰을 끼고 몇 시간 동안 하르키우 주변을 걸었다. 전쟁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느꼈던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을 방문하고 싶었다. 하르키우는 쿠즈보프씨의 고향이다. 이곳은 학문, 예술, 문학에 몰두하는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활기차고 젊은 도시다.

공격은 며칠 후에 시작됐다. 러시아는 도시를 장악할 수 없었기에 도시를 파괴하는 데 전념해왔다. 시리아나 체첸에서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이고 무차별적인 화력으로 공격했고 도시 주민들의 사기를 꺾으려 했다. 마리우폴이나 미콜라이우와 같은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이어지고 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르키우를 탈출한 쿠즈보프씨는 "가장 끔찍한 것은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리였다. 나는 그것들을 평생 기억할 것"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거실도 아이들이 공부하던 유치원 교실도 파괴를 피하지 못했다.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포격으로 파손된 아파트의 거실 모습. 2022.03.18.  *재판매 및 DB 금지

◆일상을 잃어버린 시민들

시민들이 자주 찾던 술집인 '올드 헴(Old Hem)'도 포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건물 지하에 있는 이 술집은 주인이 존경하는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헤밍웨이의 동상이 가게 앞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던 곳이다.
 
하르키우에서 산 3세대인 알렉스 세도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비명, 싸움, 술, 재미있는 노래들이 있었다"며 "멋진 곳이었는데 없어져서 무척 슬프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최소한 13일 동안 포병, 로켓, 군집 군수물자, 유도 미사일 등으로 하르키브를 공격해 왔다. 최근에는 야간에 하르키우를 목표로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다.

대부분의 하르키우 주민들은 러시아어 사용자들로 다수가 러시아계 민족이다.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일(현지시간) 하르키우 행정청사 건물 포격 후 자유광장에 시신이 놓여져있다. 2022.03.18.  *재판매 및 DB 금지

◆민간인 500여명의 죽음

소방당국은 하르키우에서 적어도 5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실제 인명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이며 구조대원들은 잔해더미 속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르키우에 남아 있는 IT 전문가 나탈카 주바르씨는 "하르키우는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포격과 폭격 소리를 듣는다"며 "공중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NYT에 말했다.

도시는 역시적 기념물들로 가득 차 있고 24개 대학과 약 20만명의 학생과 교수들의 집이라고 주바르씨는 말했다. 

하르키우 국립 대학의 주요 건물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인근 폭발로 인해 파손됐다.

보안 전문가로 일하는 마리아 아브데바는 "거리에서 정말 많은 젊은이들을 볼 수 있을 거다. 젊은이들로 인해 이 도시는 생기있고 힘찬 느낌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일을 상상해 봐라. 하르키우에서의 삶은 평소처럼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에 살 수 있나. 그들은 어느 대학으로 갈 수 있나"며 물었다.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3일(현지시간) 포격으로 파괴된 건물 앞으로 한 여자가 걸어가고 있다. 2022.03.18.  *재판매 및 DB 금지

아브데바씨와 평생 하르키우에 살아온 주민들에게 도시의 전멸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하르키우에 남아 전쟁의 파괴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주말 그는 여전히 하르키우에서 음식을 파는 가게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상점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야지 토요일은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문화·역사 유산의 파괴

지난 3월1일 미사일이 하르키우 행정청사 바로 앞에 떨어졌다. 청사는 지붕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단 주 광장의 핵심적인 건물이었다.

아브데바씨는 파괴된 건물에 대해 "하르키우 지역의 기능과 관련된 거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 건물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의미도 있다.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일(현지시간) 포격 후 우크라이나 당국 직원이 자유 광장의 행정청사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2022.03.18.  *재판매 및 DB 금지

"하르키우의 상징이다. 도시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르키우에 와서 이 건물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아브데바 씨는 말했다.

인접한 광장도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원래 구소련의 비밀경찰 창설자를 기념해 그 이름으로 불렸던 광장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쟁취한 후 '자유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쿠주보프씨는 "그들은 우리의 역사적 유산과 건축 유산을 파괴하고 있다"며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침공 일주일 전 쿠즈보프씨는 친구들과 새로 문을 연 니콜스키몰에 우크라이나 영화감독 올렉 센초프의 영화 '리노'를 보러 갔다.

3월9일 오후 10시30분께 미사일이 지붕을 뚫고 추락했고 유리와 파편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건물 내부 곳곳이 부서졌다.

러시아가 침공 초반에 벌인 공격 중 일부는 군사 목표물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하르키우 외곽에 있는 주택가와 솔티브카에 있는 아파트 등 수백 채가 피해를 입었다.

주바르씨는 "그들은 테러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임의로 포격과 폭격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떠나는 것보다 도시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 편이 낫다"고 그는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rainy7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