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23일 '서태지와 아이들', 정규 1집 '난 알아요'로 데뷔
1996년 팀 해체…1998년부터 솔로 활동
'랩 댄스' 기원을 연 주인공이자 힙합·메탈 록 알린 선구자
'발해를 꿈꾸며'·'교실 이데아'·'컴백홈' 등 사회적 메시지로도 주목
국내 팬덤 문화 원형 만든 팬클럽 '서태지 매니아(마니아)'
서태지가 오는 23일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1992년 3월23일 양현석(52)·이주노(55)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정규 1집 '난 알아요'로 국내 음악계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지금 K팝으로 통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가 된 '랩 댄스'의 형태를 고착화시킨 주인공이자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 팬덤 문화의 원형을 만들었다. 글로벌 수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이전에 1세대 아이돌 그룹 'H.O.T'가 있었고, 그 이전에 서태지가 있었다.
서태지도 벌써 반백년을 살았다.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시대를 보낸 이들의 상당수가 기억하는 서태지는 젊다.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 줄 순 없다, YO!(1992.03.23)
국내 '댄스 랩'의 시작인 기념비적 앨범인 서태지와아이들의 정규 1집의 타이틀곡은 앨범 제목과 동명인 '난 알아요'였지만, '환상 속의 그대'에 대한 주목도 못지 않았다. 특히 "모든 것이 /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 지금 자신의 모습은 /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라고 노랫말은 시적이면서도 세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당시를 반영했다.
서태지와아이들의 첫 방송은 1992년 3월29일 KBS 2TV '젊음의 행진'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의 반향을 얻기 시작한 건 같은 해 4월11일 MBC TV '특종 TV 연예' 첫 회였다. 당시 신인 무대 코너를 통해 소개됐을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았던 것이 여전히 회자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팀이 소개됐다는 것에 무게중심이 실려야 한다.
1992년 당시 MBC TV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던 예능 '일요일 일요일밤에' PD였던 주철환 작가 겸 노래채집가(前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엄청 반향을 일으켰다. 신드롬이자 문화적 광풍"이었다고 기억했다.
"대중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따라하는 현상을 '뉴스데스크'에서 다루고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을 따라하는 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너에게 모든 걸 뺏겨 버렸던 마음이(1993.06.21)
1절과 2절 사이에 무려 1분이 넘는 이태섭의 일렉 기타 솔로가 삽입됐고,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참여한 고음의 태평소가 드라마틱한 정경을 선사했다.
당시 모든 수학 여행의 BGM이었던 '우리들만의 추억'과 '마지막 축제', 명 발라드 '너에게', 한국 대중음악에서 접할 수 있는 진지함의 무게추를 길게 늘어뜨린 수작 '죽음의 늪'도 실렸다.
◆진정 나에겐 단한가지 내가 소망하는게 있어(1994.08.13)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특히 사회적 메시지로 주목 받은 앨범이다.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는 대중음악에서는 드물게 통일을 주제로 삼았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철원 노동당사에서 촬영해 큰 화제가 됐다.
교육 문제를 꼬집은 후속곡 '교실 이데아' 역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등 반항적인 노랫말이 강렬한 사운드에 담겨 청소년들이 억누린 것들을 토하는 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메탈 밴드 '크래쉬' 멤버 안흥찬의 포효하는 보컬이 힘을 실었다. 해당 곡은 카세트 테이프를 거꾸도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억측으로 인한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1995.10.05)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은 갱스터 랩을 주축으로 한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앨범. 장르는 변했으나 전작에 이어 사회적인 메시지는 또렷했다. 가출 청소년이 돌아가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 '컴백홈'이 그것이다.
특히 4집은 국내에서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촉발시킨 분기점이 된 음반이기도 하다.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애초 4집에 '온전히' 실릴 예정이었다.
이 사건이 서태지 팬들을 중심으로 벌인 사전심의제도 폐지 운동의 불씨가 됐다. 결국 1996년 이 제도는 폐지됐다. 서태지는 이를 기념해 온전히 가사를 살린 '시대유감'을 싱글로 내놓았다.
주철환 전 PD는 서태지에 대해 "사회 어젠다 세팅에 도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봤다. "'발해를 꿈꾸며'에서는 통일, '교실 이데아'에서는 교육, '컴백홈'에서는 가정의 해체에 대해 다뤘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예술로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태지는 음악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지만 노랫말이 특히 반향을 일으켰다. 영향력 있는 노랫말은 '움직이는 시(詩)'이기도 한데, 서태지는 노랫말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아티스트"라고 해석했다.
◆솔로 서태지 그리고 5~9집
1996년 1월31일. 누구가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한 날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4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으며 은퇴 기자회견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후 같은 해 초에 신곡 '굿바이'가 포함된 '굿바이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고 이 팀은 짧지만 굵은 역사를 끝냈다.
이후 가수 활동을 일체 하지 않던 서태지는 1998년 홀연히 음반 소식을 전한다. 자신의 영문 이름(Seo Tai Ji)을 내세운 첫 솔로앨범을 그 해 7월에 내놓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거의 모든 창작 작업을 도맡았던 만큼, 이 앨범은 5집이 된다.
트랙 제목이 대부분 '테이크(take)'로 시작돼 '테이크 연작'으로도 통하는 이 앨범은 얼터너티브 록이 주 장르다. '테이크 2'가 타이틀곡이었고 밟은 풍의 수록곡 '테이크5'가 크게 히트했다. 해당 앨범이 나왔을 때는 서태지가 미국에 머물던 때라 공개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130만장가량이 팔렸다.
2000년 발매된 6집 역시 큰 관심을 받으며, 서태지의 진가를 확인한 앨범이다. 헤비메탈 사운드에 랩을 곁들인 하드코어 장르인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가 반향을 일으켰다. 빨간색으로 염색한 레게 머리가 보수적이던 방송 복장 규정에 걸리기도 했다. '대경성', '인터넷 전쟁', '오렌지' 등의 수록곡은 사회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2008년 8집 '아토모스'도 명반 중의 하나로 통한다. '태초의 소리'를 담겠다며 본인이 명명한 '네이처 파운드' 장르를 내세웠다. 충남 보령의 미스터리 서클, 코엑스몰의 UFO 불시착 등 대형 이벤트를 담은 사전홍보도 화제였다. 청량한 느낌의 '모아이'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이 음반은 '모아이'가 담긴 싱글 1, '줄리엣'이 담긴 싱글2로 나눠 발매됐다.
2014년 발매한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는 한층 더 대중적으로 접근한 앨범이다. '음원 강자'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을 선공개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간 고수하던 신비주의 방식도 덜고, '해피 투게더'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앨범은 동화가 콘셉트다. 아이만을 위한 건 아니다. 어른이 함께 들을 수 있다. '만년 소년' 서태지가 어느덧 '아빠'가 된 모습이 투영됐다. 서태지는 그래도 서태지다. 마냥 동화도 편하게 쓰지 않는다.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은 크리스마스와 핼러윈의 조어다. 쉽지 않다. 그로테스크한 동화다. '소격동'엔 서슬 퍼런 80년대 정서가, '크리스말로윈'엔 권력에 대한 통찰이 각각 곡 뒤에 똬리를 틀고 있다.
◆서태지 시대는 끝났다?…K팝 원형 만든 여전한 영향력
서태지는 '콰이어트 나이트' 발매 전 배우 이지아와 결혼과 이혼, 그리고 배우 이은성과 결혼 등 사생활로 더 화제가 됐다. 이 앨범 발매 기자회견에서 "서태지 시대는 90년대 끝났다" 등 솔직 담백한 답변들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서태지의 음악적 유산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 여전히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서태지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2016)의 김성수 음악감독은 "서태지 씨는 한국에서 없거나 실행되지 않던 장르를 대중화시킨 아티스트"라고 봤다. 서태지의 기존 곡을 압도적으로 편곡한 사운드로 주목받았던 김 감독은 지난 2017년 서태지 25주년 콘서트에서 지휘자로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 록밴드 '시나위'에 몸 담기도 했던 서태지는 대중에게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장르 변환이 많은 뮤지션이다. 정희석(2002년 별세) 전 연세대 음대학장을 셋째 할아버지로 둔 서태지는 3집에 실린 '영원'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함께 담으면서 클래식 음악적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태지의 독창성과 개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김성수 음악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음악의 태도가 확실해 듣는 사람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최근엔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통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지만 예전엔 서태지 씨의 음악을 듣고 '우리도 이런 장르를 해도 되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장르를 하든 명확한 태도로 토를 달기 힘들다"고 했다.
"영화 장르에서 따지면 쿠엔틴 타란티노 같다. 음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서태지 같은 뮤지션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철환 전 PD는 "1990년대에 지금처럼 소셜 미디어가 활발했으면 서태지가 한류스타의 위상을 자랑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서태지는 음악 산업에서도 획을 그었다. 도심형 록 페스티벌 'ETP페스트(FEST)'를 만들고, 록 레이블 '괴수 인디진'을 만든 뒤 록밴드 '피아'와 '넬'을 영입했던 것이 예다. 무엇보다 우리 대중음악의 문법을 영상 중심으로 만들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11018 콘텐츠 본부장 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서태지는 한국 음악의 중심축을 라디오에서 비디오로 바꿨다. 랩의 한국화, 그리고 안무의 시대를 댄스의 시대로 바꾸면서 댄스 뮤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K팝의 핵심적 요소의 초석을 다진 의미로 서태지의 30주년을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대화 음악 저널리스트(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국내 흑인음악의 발전에 대한 서태지의 지분을 짚었다.
이 저널리스트는 "서태지는 완전히 대중화되지 못한 랩이라는 음악적 요소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본격적인 힙합그룹으로 활동하지 않았지만 한국 내 힙합 대중화에 기여했다.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빅뱅·블랙핑크를 통해 YG를 국내 음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회사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다양한 장르와 시스템을 성공시켜 본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힙합과 아이돌을 묶는 등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서 얻은 확신으로 '흑인음악'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화 저널리스트는 "최근 10대 인구가 줄고 새로운 것보다 옛날 것을 가지고 오는 흐름이 생기면서 요즘은 10대가 아닌 30~40대가 반응하는 것이 문화계의 트렌드라는 반응도 있다. 서태지가 계속 이슈를 장악할 수 있다"고 봤다.
K팝 아이돌이나 래퍼 그리고 R&B 뮤지션 등 장르 구분 없이 그로부터 음악적인 계승도 여전하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는 지난해 마지막날 자신들의 레이블즈 콘서트 '2022 위버스 콘 [뉴 에라]'에 서태지 헌정 무대를 꾸몄다.
지난 2017년 서태지가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연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에 방탄소년단이 게스트로 출연한 점을 떠올리면, 서태지에 대한 하이브의 존경심은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다. 이 콘서트 당시 서태지가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라고 말한 일은 여전히 회자된다.
MZ 세대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래퍼 창모는 작년에 '태지'라는 곡을 발매, 그에 대한 존중심을 드러냈다. 최근 가장 부상 중인 R&B 싱어송라이터 드비타는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에서부터 서태지 8집 '아토모스(Atomos·2009)' 앨범을 많이 듣고 명반으로 여긴다며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서태지와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조혜림 플로(FLO) 콘텐츠 기획 매니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지금의 1020세대에게는 다소 낯선 서태지는 아이유와 방탄소년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1020세대에게 주입함과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인정한 행보를 보여줬다"면서 "서태지는 언제나 문화의 한 가운데에 서있다. 아이유, 방탄소년단, 창모 같은 현재 진행형 후배들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의 새로운 음악을 통해 그자리를 계속해서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태지는 2014년 '콰이어트 나이트' 이후 아직 음반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0년대 말부터 10집 발매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지난 25주년 공연무대에서 '우리 30주년에 또 만날까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었다. 그때는 당연히 10집도 나오고 30주년 공연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늦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다.
당시에도 음반, 공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서태지 컴퍼니 역시 아직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태지가 '30주년 프로젝트'를 올해 안에 선보일 것이라고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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