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 기틀 세운 시대의 지성 잠들다
황희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문화 새 시대 열어주셨다"
도종환·유인촌 등 문체부 전 장관들 한자리 애도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 도서관 발전 정책 기반 마련 등을 통해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장례를 문체부장으로 거행했다.
특히 문인으로서 평생을 집필활동에 몰두하고, 문화부 장관 재임 시 도서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고인을 기려 지성의 상징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고인의 영정 입장을 시작으로 묵념,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정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약력보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조사,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추도사 등을 진행했다.
◆황희 "故이어령 기억할 공간 마련…숨결 이어가겠다"
황희 장관은 "고인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며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 전 장관의 숨결을 이어나가겠다"고 고인이 장관으로 재직 시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사항을 강조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고 추모했다.
그는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그 말에 늦었지만, 같은 말로 화답 드리고 싶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 시대의 옳은 목소리를 내어주신 고인의 삶이 우리에겐 선물이자 희망이었다"며 "생전에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 하셨다. 그 말씀 그대로 고인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계실 것"이라고 추도했다.
시인인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한 시대의 새벽을 깨운 빛의 붓,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밝히소서. 고 이어령 선생님 영전에 올린다"며 헌시를 공개했다.
그는 "분단의 나라에서 냉전의 벽을 깨뜨리는 서울올림픽의 한 마당을 가로지르는 굴렁쇠 소년은 바로 선생님의 모습이었고 새천년의 아침에 북소리로 띄운 해는 이 나라 5000년 역사의 눈부신 새 아침이었다"며 "선생님은 이 땅의 한 시대의 어둠을 새벽으로 이끈 선각이시며 실천가이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아울러 "붓의 시대에서 오늘의 AI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혜안은 먼 미래를 앞서 내다보셨고 새 이론의 창출은 어김없이 실용화됐다"며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한예종을 비롯한 문화 대역사를 이루셨으며 20세기 한국의 뉴 르네상스를 떠받친 메디치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추모했다.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교수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가셨다는 선생님, 죽음이 올 때는 고개 돌리지 않고 뜬 눈으로 정 대면하며 '거기에 있겠다'는 선생님이 가장 명철한 선생님답다"며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고 애도했다.
이어 헌화와 분향을 진행하고 고인이 설립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추모공연으로 영결식을 마무리했다.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첼로 앙상블로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의 '엘레지(Élégie)'를 연주하고, 국악 공연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창(弔唱) '이 땅의 흙을 빚어 문화의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여'를 연주했다.
◆문체부 전 장관들, 문화예술계 인사 한자리
영결식에는 유족과 이채익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박정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김승수 국민의힘 문체위 간사,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문체위 위원, 송태호·신낙균·김성재·김종민·유인촌·정병국·박양우 문체부 전임 장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화예술 공공기관장과 문화예술계 인사 등 2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2017~2019년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던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 지성을 대표하시는 분이셨고 문학하시는 분으로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 존경할 만한 분이셨다"며 "선생의 정신을 문학으로 어떻게 이어갈까 하는 고민을 지난 며칠간 했다. 선생께서 문학으로 이루신 큰 성취를 잘 이어가자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인 박양우 전 장관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문화정책, 행정의 달인이셨다. 우리나라의 예술뿐 아니라 문화행정에 있어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며 "개인적으로 그분 밑에서 행정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고인은 떠나셨지만 행정하는 문체부 후배와 동료들은 장관의 정신, 행정하셨던 뜻을 받아 다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병국 전 장관은 "대한민국이 오늘날 문화강국이 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으셨다. 제가 장관에 취임하고 인사를 갔을 때 제게 '흙속에서 저 바람속에서'와 '디지로그'를 선물하셨다"며 "돌아와 책을 읽어보니 우리 문화를 발굴하셨고, 우리 문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셨다"고 전했다.
이 전 장관 재임 당시 수행비서였던 박광무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31년 전에 모셨다. 그후에도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뵙고 지혜를 얻었다"며 "이 전 장관께서 못 이루신 일들을 후대 문화부 후배들이 감당해 우리나라 문화의 발전뿐 아니라 세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한 달 전쯤 찾아뵜다. 지난 30년을 짚으시면서 앞으로 30년의 해야할 일을 말씀하셨다"며 "예술은 표현하기 위해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씀 깊이 새기면서 더 좋은 한예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 후 화장…천안공원묘원 안장
고인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는 중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지날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광화벽화'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과 추모 문구를 표출해 애도의 뜻을 더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해당 문구는 고인의 유족들이 직접 선정한 것들이다.
그는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다"며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말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 별세한 이 전 장관의 장례는 문체부장으로 5일간 치러졌다. 발인은 이날 오전 8시30분이었으며 영결식 후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충청남도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된다.
한편 고인은 노태우 정부때 신설된 초대 문화부 장관(1990~1991)을 지냈으며, 60년 넘게 학자·언론인·소설가·비평가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려왔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지역 검사로 일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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