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우크라 놓고 위험한 심리전…자칫 오판 가능성도" NYT

기사등록 2022/02/16 12:19:36 최종수정 2022/02/16 13:46:43

상대방을 겁주고 압박하는 각종 조치 홍수 속

상대 소진시키려는 모호한 행동도 늘어나면서

자칫 상황 통제할 수 없는 오판 위험도 커져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위험도가 높은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반적 방식의 외교활동도 이같은 심리전의 한 측면을 차지한다. 군대 이동, 제재 경고와 법률 제정, 대사관 폐쇄, 정상회담, 정보 유출 등이 모두 부분적으로는 두 나라가 특정 위협을 수행하거나 특정 리스크를 감수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일종의 고난도 협상인 셈이다. 유럽의 미래를 전쟁의 결과에 따라 결정짓는 것 못지않게, 주로 마롤 하는 전쟁인 것이다.

러시아는 극동에서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극동지역 부대를 이동시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로 하여금 러시아의 안보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전쟁도 감수할 것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두 나라가 러시아의 요구를 평화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 침공이 임박했다고 밝히고 키예프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경제 보복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러시아가 미국의 대폭적 양보를 끌어낼 수 없으며 상황을 악화시켜봤자 좋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런 식의 제스처는 넘쳐 난다. 러시아는 흑해에서 해군 훈련을 벌여 교역을 차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과 공동성명을 발표해 유럽국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위협으로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했다.

그러나 양측이 자신의 위협이 진짜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오판의 위험도 높아진다.

양국은 자국의 의도를 감추거나 상대방 의도를 거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행동한다. 상대방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도록 만들어 에너지를 소진시키려는 것이다.

미 백악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주 침공 강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러시아의 의도적인 물타기를 방해하는 한편 유럽인들에게 도발이 발생하면 그건 러시아의 행동이지 다른 도발행위에 대한 대응차원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15일 러시아는 소수 군대를 철수하면서 벨라루스의 합동군사훈련을 지속하고 푸틴이 직접 우크라이나가 자국내 러시아어 사용 국민들을 학살한다고 비난하는 등 혼란을 자극하는 행보를 보였다. 긴장완화와 침공 양쪽 모두를 가장함으로써 서방이 양측 가능성 모두에 대비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콜럼비아대학교 케렌 야리-밀로 정치학교수는 "이같은 움직임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문화, 듣는 사람의 의도 등 수많은 요인들이 불확실성을 야기해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기가 극도로 어렵다"며 그 결과 전쟁 못지 않게 외교적 불화가 동반하는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미국은 현재 진행되는 상징전쟁의 결과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하려 애쓰고 있다. 침공으로 러시아가 이득을 볼 것인가? 서방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하는 제재를 못이겨 포기할 것인가?

러시아가 미국이 위 두가지 사안에 대해 그럴 것이라고 결론내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바이든과 미 동맹국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도록 놔두는 것보다 양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이 러시아로 하여금 반대의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푸틴은 자신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고 벼랑에서 물러서게 될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성공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감춰왔다. 최근 중국 방문 행보나 제재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러시아 대사의 제스처는 그가 앞으로 닥쳐올 대가를 감내할 수 있다는 신호다.

물론 전쟁으로 러시아가 득을 볼 것이 분명하다면 벌써 침공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푸틴도 일부 블러핑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디까지가 블러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함으로써 러시아에게 더 큰 고통을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침공시 보복 제재안을 상세하게 밝혔다. 서방이 단결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발언은 푸틴의 전쟁 위협 못지 않게 블러핑이다.

미 정부는 러시아가 침공 명분을 조작할 것이라고 공표하기도 했다. 그런 시도가 있으면 즉시 폭로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러시아가 조작 의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그러나 위협과 블러핑은 행동으로 뒷받침될 때만 효과가 크기 때문에 양측 모두 진정 원치 않을 지 모르는 전쟁 발발의 위험이 커진다. 특히 양측 모두 여러 상충된 내용을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설득해야 하는 복잡성이 뒤따른다.

바이든은 푸틴에게 서방의 제재가 즉시 강력하게 발동할 것임을 납득시키는 동시에 제재로 인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유럽국들에게는 제재로 인한 서방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동의 없이 실행하지 않겠다고 납득시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푸틴은 서방 지도자들에게 전쟁준비가 돼 있음을 알리는 동시에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서방 지도자들은 푸틴이 하는 말 가운데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시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전직 미 정보당국자 크리스토퍼 보트가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홈페이지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보트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러시아의 "허위 정보 홍수"가 러시아가 이미 침공하기로 결정해놓고 외교 제스처를 보인다고 서방 지도자들이 생각하도록 만들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하도록 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카네기재단 모스크바 지국의 알렉산데르 가부에프는 "서방 시스템이 우리보다 더 개방돼 있다. 그 때문에 더 많은 혼선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소수 정보 및 군사 고위층이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에 미국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군 장교가 툭툭 내뱉는 말들을 러시아가 중시하는 반면 미국의 정치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의원들은 무시되는 것처럼 말이다. 구바에프는 그같은 문화적 차이가 미국과 러시아가 상대의 외교관을 추방하고 비공식적 접촉을 중단하면서 최근 훨씬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 반드시 위험을 크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바이든이 푸틴처럼 행동할 것으로 생각해 푸틴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이 이겼다고 선언하려고 갈등 분위기를 조작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푸틴은 철수결정을 내리기가 쉬워지고 서방이 러시아를 공격하고 있다고 러시아인들이 믿도록 설득할 수 있으며 따라서 푸틴은 항복한 것이 아니라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기에 상대의 의도나 반응을 예상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애덤 케이지와 세바 쿠니츠키는 최근 포린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이 오래도록 바뀌지 않아서 옛날 푸틴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측근들이나 서방에 대해 강경하고 불신을 드러내는 안보당국자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독재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패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직까지 양측은 상대에 대한 오판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다. 위기가 오래 지속된 덕분에 양측이 상대방에게 의도와 능력을 반복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변수는 동시에 양측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경우 실수를 촉발할 가능성을 키운다. 국제관계 전문가 야리-밀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일이 잘못될 확률이 커진다"면서 "시간이 길어지면 여러 사람의 뱃심을 시험해보는 꼴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칫 상황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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