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인정한 EU택소노미…시민단체 "국내 반영은 어려워"

기사등록 2022/02/06 11:00:00

EU집행위, 원전 포함 '그린 택소노미' 내놔

방폐장 확보·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조건

"방폐장 건설 어려워…2050년 완성 힘들듯"

"사고저항성 핵연료, 새 원자로 개발과 비슷"

환경부 "최종안 확정 여부 본 뒤 본격 논의"

[서울=뉴시스] 월성 원자력발전소 모습.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성원 기자 = 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을 녹색경제 활동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최종안을 내놓은 가운데 국내에서는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하기 힘들 것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제기됐다.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산업계 다수 의견과 달리, 단기간 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할 수 없고 가동 중인 원전을 새로 바꿔야 하는 만큼 그린 택소노미가 오히려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 4일 논평을 내고 "EU 최종안은 강화된 원전 안전성 개선 및 핵폐기물 처분 책임 방침이 반영돼 있어 그대로 확정하더라도 국내 원자력계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고강도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BBC 등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일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한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을 발표했다.

그린 택소노미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녹색경제 활동의 범위를 정한 것이다. 어떤 산업에 사용된 에너지원이 친환경적인지를 따지고, 그에 맞게 투자를 지원하도록 하는 등 녹색경제의 기준이 된다.

논란이 되는 쟁점 중 하나는 원전이다. EU 집행위는 원전을 탄소 배출량이 없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라고 판단했다. 프랑스 등 원전을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최종안을 찬성하는 반면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은 원전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국내에서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환경부가 원전을 제외한 K-택소노미를 발표한 이후 산업계를 중심으로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수급 불안정성에 대비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U 최종안은 원전 포함 주장에 불을 지폈다.
[루아르=AP/뉴시스]지난 2007년 3월27일(현지시간)자 사진으로, 프랑스 중부 루아르강 건너편에 원자력 발전소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1.10.13.
그러나 EU 최종안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에 부합하는 원전을 국내에 조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최종안에서 제시된 조건인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방폐장) 확보 ▲폐기물 처리 세부계획 마련 및 심의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은 사실상 국내에서 실현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법은 땅속 깊게 묻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확립된 방법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스웨덴과 핀란드만 50여년에 걸쳐 부지를 확보해 건설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은 주민들의 핵폐기장 건설 반대로 부지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에너지전환포럼 측은 "고준위 방폐장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핀란드와 스웨덴만 확보했고, 반세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며 "두 나라 모두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인구 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보유 원전설비용량도 작아 매우 유리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1986년부터 방폐장 부지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핀란드, 스웨덴보다 인구 밀도가 높아 적합한 부지 확보가 어렵고, 실제로 건설에 착수하더라도 2050년까지 완공이 가능한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고준위 방폐장은 만들기 어려운 구조다. 스웨덴, 핀란드도 완성되는 시점이 2050년이다. 오래 걸린다"며 "우리나라는 고준위 방폐장을 만들기 위해 명분을 쌓는 중이다. 단기간 결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뉴시스] 후쿠시마 사고 10주년준비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3월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문화비축기지에서 3.11 후쿠시마 핵사고 10년을 맞아 핵발전소 폐기 등 탈원전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특히 원전업계가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개발 중인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현재 거의 모든 원전에서 사용 중인 '지르코늄 피복 핵연료'보다 사고시 화재폭발 위험이 적다. 웨스팅하우스는 미국과 벨기에 등지에서 실험한 뒤 2020년대 중반까지 개발을 마치고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저항성 핵연료 전환에는 여러 난관이 예상된다. 전환시 현재 핵연료 설계 및 이와 관련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원자로 개발과 맞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에너지전환포럼 논평에서 "핵연료 설계가 변경되면 원자로 핵설계 코드, 열수력설계 코드 등 원자로 안전운전과 관련된 컴퓨터 코드 시스템을 갱신하고, 코드가 안전한지 심사해 면허를 부여해야 한다"며 "기존 핵연료 공장이 제조 공정을 변경해야 하는 등 상용화에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세종=뉴시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K-택소노미를 마련한 환경부는 우선 EU 의회의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 확정 여부를 지켜본 뒤에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EU 의회의 최종안 확정에는 앞으로 4~6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다만 환경부가 원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논의에 들어가더라도 실제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기까지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원전 포함 여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앞서 지난달 11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됐지만 한시적이고 강력한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 들어갔다"며 "EU는 회원국 간 갈등이지만 한국은 국민 간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필요성을 느낀다면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면 가능할 순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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