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사실 관련성에 대한 구분 없이 임의로 압수"
"영장주의·적법절차 원칙 위반 명백" 재항고 인용
영장 효력 사라질 경우 재판에서 증거 사용 불가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공무상 비밀누설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광주경찰청 책임수사관이 '검찰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압수를 취소해달라'고 낸 재항고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광주경찰청 책임수사관 A(51)경위가 낸 압수처분 재항고 사건에서 원심의 준항고 기각 결정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준항고는 사법기관이나 수사기관이 행한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다. 수사기관의 처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그 자체로 재항고 대상이 된다.
최종 인용돼 영장의 효력이 사라지면 이를 통해 확보된 압수물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광주지검 강력부는 2020년 4월 A경위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 특수부가 보관하고 있던 A경위의 휴대전화 복원 자료(포렌식·디지털 증거 복원)를 압수했다.
특수부는 2019년 7월 광주경찰청이 송치한 법조인과 다른 경찰의 변호사법 위반·공무상 비밀누설 사건과 관련, 참고인이었던 A경위의 휴대전화 자료를 넘겨받아 보관해왔다.
강력부는 A경위의 휴대전화 자료에서 구속영장 기각 결정서 사진을 외부로 유출한 기록 등을 찾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했다.
A경위는 "검찰이 집행 과정에 참여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수사해왔다. 혐의 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해야 하는 원칙도 무시했다"며 압수수색 위법성을 주장했다.
원심은 압수가 적법하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A경위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혐의와 관련 있는 정보를 선별해 압수한 뒤에도 그와 관련이 없는 나머지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면, 영장 없이 압수수색해 취득한 것이어서 위법하다. 사후에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거나 피고인이 증거 활용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이 치유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결국, 수사기관은 혐의사실 관련성에 대한 구분 없이 임의로 이 사건 휴대전화 내 전자정보 전부를 1개의 압축 파일로 생성·복제하고, 이후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만을 탐색·선별해 출력·복제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압수 조서를 작성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1개의 파일만을 기재한 것을 상세목록이라는 이름으로 A경위에게 교부했고, 범죄 행위와 관련 없는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는 조치도 하지 않고, 저장매체에 복제된 상태 그대로 보관했다. 이는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영장에 기재된 압수의 대상·방법의 제한)을 중대하게 위반해 이 사건 파일을 압수·취득한 것이므로, 파일 전체에 대한 압수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A경위의 기소 전후 경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과거 자료를 끄집어내 새로운 사건으로 인지하는 방식의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A경위는 2019년 12월 광주 남구 월산 1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입찰 담합과 조합비리 수사 과정에 H건설사 측에 압수수색 집행 계획을 누설한 뒤 압수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지난해 1월 비위 관련자인 H건설사 대표를 입건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경위는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간부 경찰관에게 사건관계인 인적사항·공범 진술 내용·양형 참작 사유 등이 담긴 구속영장 기각 서류 원본 사진을 보내거나 고교 동문 선배들에게 제보자 신원, 알선수재 사건 진행 경과, 구속영장 신청 사실·기각 사유 등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도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2016년 11월 알선수재 혐의로 자신이 수사했던 북구 용두동 지역주택조합장에게 검사 출신 변호사를 알선한 혐의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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