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장기' 이식 경쟁력 있지만…안전성 검증·불평등 해소 '숙제'

기사등록 2022/01/14 16:07:23 최종수정 2022/01/14 16:13:55

국내 연구 활발…하반기 돼지 췌도 임상 목표

"미국과 경쟁할 만"…이식 적합 돼지생산 관건

"돼지심장 수개월 뛰어야"…안전성 검증 필요

빈부격차 따른 장기이식 불평등 해소도 화두

[볼티모어=AP/뉴시스] 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소재 메릴랜드 의료센터 수술팀이 지난 7일(현지시간) 환자 데이비드 베넷에게 이식할 돼지 심장을 보여주고 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미 의료계 최초로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베넷이 사흘째 회복 중이라고 병원 측이 1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022.01.11.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한 미국과 비교해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안전성 검증과 빈부격차에 따른 장기이식 불평등 해소는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내 생명 연장 연구 활발…하반기 돼지 췌도 임상 목표

국내에서도 사람이 아닌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해 인류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돼지의 장기는 사람과 크기나 해부학적 구조가 비슷해 면역거부 반응이 없다면 인체에 이식하기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축산원)과 윤익진 건국대 교수팀은 지난 2016년 유전자 형질을 변형한 돼지 심장을 원숭이에 이식했다. 국내에서 돼지 심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한 세 번째 사례였다. 특히 이 원숭이는 60일 간 생존해 국내 이종 간 심장 이식 수술 중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연구진은 심장 외에 췌도 세포와 각막, 피부 이식에도 성공했다.

제넨바이오, 서울대 이종장기사업단, 가천대 길병원은 돼지 췌도(췌장세포 덩어리)를 선천성 당뇨병인 '1형 당뇨병' 환자 2명에게 이식하려는 임상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 신청서를 제출했다. 식약처의 임상시험 승인을 거쳐 올 하반기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광원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식약처에서 요구한 몇 가지 자료 보완이 올 상반기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하반기 임상시험을 통해 사람에게 이식한 돼지 췌도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당뇨병 환자 수가 많아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5년 후 따라잡을 전망"…이식 적합 돼지생산 관건

전문가들은 이번에 미국에서 9개의 유전자 형질을 변형한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했고 우리나라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데다 향후 환자가 얼마나 오랜기간 생존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해 경쟁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종이식용 형질변환 돼지 '지노(XENO)'를 개발한 축산원은 연내 유전자 형질을 5개 변형한 돼지를, 오는 2024년까지 9개 변형한 돼지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윤익진 건국대 교수는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카스 나인'과 같은 기술이 많이 개선돼 유전자 형질을 여러 개 변환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나아졌다"면서 "또 많은 종류의 유전자를 변환시켜도 어떤 유전자가 (인간의 생명 연장에)유효하고 꼭 필요한지 아직 결론이 났다고 볼 수 없어 단순히 (유전자 형질 변환을) 많이할수록 좋다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자 형질 변환을 여러 개 하는 것을 검증할 필요는 있지만, 과거 유전자 형질 변환을 7~8개 했음에도 불구하고 3~4개 또는 2~3개 형질 변환을 한 것보다 이식 성적이 더 좋진 않았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축산원 관계자도 "미국에서 유전자를 9개까지 컨트롤(형질 변환)했다고 해서 사람에게 접목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지난 7일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이식받자마자 바로 조직의 괴사가 일어나는 초급성 면역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유효성과 부작용을 확인하려면 적어도 수 개월 이상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규 서울대의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이종 간 장기이식은 미국에 견줄 만하다"면서 "돼지 각막이나 췌도 이식을 리딩하는 위치까지 왔고, 이종 간 장기이식 인프라도 구축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이식돼도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무균돼지 개발 경험도 있고 유전자 편집 기술도 많이 발전된 만큼 미국처럼 정부의 투자가 뒷받침돼 이종 간 장기이식에 적합한 유전자 형질 변환 돼지가 많이 생산되면 5년 정도 후에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볼티모어=AP/뉴시스] 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소재 메릴랜드 의료센터의 바틀리 그리피스(왼쪽) 박사가 환자 데이비드 베넷과 셀카를 찍고 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미 의료계 최초로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베넷이 사흘째 회복 중이라고 병원 측이 1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2022.01.11 *재판매 및 DB 금지

◆"돼지심장 수개월 뛰어야 의미"…안전성 시간두고 검증해야

하지만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이종 간 장기이식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은 장기적 과제로 남아 있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 이뤄진 돼지 심장의 인체 이식은 환자가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을 가능성이 없고 당장 이식받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어 특별히 허용된 것"이라면서 "이식받은 환자의 심장이 적어도 몇 달 이상은 뛰어야 (이종 간 장기이식의)의미와 가치가 있는데, 미국에서 이식이 이뤄진 지 아직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10년 이상 유전자 형질 변환 돼지를 개발해온 미국 바이오 기업 리비비코어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시행한 '퍼포먼스'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식약처에서 돼지 췌도 인체 이식 임상시험의 안전성을 좀 더 확인해 달라고 요구해 쥐를 이용해 실험 중"이라면서 "사람에게 이식된 돼지의 췌장 세포들이 문제 없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다른 동물 간 장기이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면역거부 반응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설명했다.

축산원 관계자는 "이종 간 장기이식에 적합한 돼지를 개발한 후 그 장기를 영장류인 원숭이에 이식해 얻은 데이터들이 좀 더 축적돼야 향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다"면서 "장기이식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이식 패권 쥔 선진국, 막대한 비용 요구할 수도

미래 돼지의 장기를 실제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의학기술이 발전하면 빈부격차로 인한 장기이식 불평등 해소도 화두로 떠오를 수 있다. 이종 간 장기이식 분야에서 헤게모니(패권)를 쥐게 된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이 환자에게 막대한 비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서다.

윤 교수는 "미국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장기가 필요한 환자에게 현지에서 수 억원을 지불하고 수술받을 것을 요구할 공산이 굉장히 커 전 세계 장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면서 "가난해 동물의 장기를 이식받지 못해 살 수 없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전자 형질 변환 돼지 개발·생산 등이 나라별 혹은 제3 세계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종 간 장기이식을 시도 중인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독일, 중국, 일본 정도다. 한때 연구가 활발했던 독일은 현재 리비비코어 돼지를 이용해 실험 중이다. 일본은 돼지의 유전자 형질 전환 관련 기초 연구는 많지만 투자가 부족해 영장류 실험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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