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쿠로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귀신들의 소동으로 으스스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 그 속내는 따뜻하다. 엄혹한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던 형을 잃고 오갈 곳 없는 시계 수리공 '해웅'도, 폐가 쿠로이 저택에 갇힌 지박령 '옥희'와 원귀들 모두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웃음과 희망을 그려낸다.
이야기는 형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해웅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폐가 쿠로이 저택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의 그곳엔 성불만을 바라는 지박령 옥희와 각자의 소망을 가진 아기귀신, 처녀귀신, 장군귀신 그리고 귀신들의 고참인 선관귀신이 있다. 옥희는 해웅이 자신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불을 위해 그와 계약을 맺고 과거의 시간을 되짚는다.
극작을 하면서 '꼬마유령 캐스퍼'를 떠올렸다는 표상아 작가의 말처럼 쿠로이 저택의 지박령 옥희는 귀엽고 착한 유령 캐스퍼처럼 너무나 사랑스럽다. 저택을 새롭게 공사하려는 일본 사람들에게 귀신의 몸짓으로 음침하고 무섭게 겁을 주지만 이를 보는 관객들에겐 한없이 귀엽다.
옥희와 함께 쿠로이 저택에 머무는 귀신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굶어 죽은 아기귀신, 승천을 꿈꾸는 처녀귀신, 자꾸만 칼을 빼드는 장군귀신, 춤추다가 떨어져 죽은 할아버지 선관귀신까지 어설프면서 순수한 모습으로 웃음을 책임진다. 특히 극 중 1인2역부터 1인4역까지 선보이는 네 명의 배우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각양각색 연기로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극에서 실수인지 진짜 극본인지 헷갈릴 정도의 팀워크도 엿보이며 옥희, 해웅 역까지 6명 배우의 조화가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유쾌함 속에 담긴 재치 있는 상징과 반전이 이 작품을 뻔한 코미디로 만들지 않는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 등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지금 이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힘이 돌아보면 중요한 일을 만들어냈을 수 있다고, 작지만 큰 힘과 지금의 소중함을 따듯하게 전한다.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2018년 충무아트센터 스토리작가 데뷔 프로그램 '뮤지컬 하우스 블랙앤블루'에 선정됐고, 지난해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약 4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지난 2월 초연 무대를 올렸다. 홍나현을 비롯한 정욱진, 최민우, 송나영, 한보라, 원종환, 유성재, 김지훈, 김남호, 황두현이 다시 돌아왔고, 진태화, 양서윤, 이경욱이 새롭게 합류했다.
내년 1월9일까지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