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차 1라운드로 KT 합류…팀의 1군 데뷔부터 함께해
"팀 9등일 때 군대 갔는데, 돌아오니 1등…실감 안 날때도"
"KS 불펜 등판, 더 성숙해질 것"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고영표(30·KT 위즈)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한때는 리그 꼴찌를 도맡아 하던 팀이 이제는 1등이 된 현실이 그저 신기하다.
KT는 올해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하고 리그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팀'으로 우뚝 섰다. 2013년 창단 후 8년 만에 거둔 성과다.
팀의 1군 데뷔 준비부터 함께했던 창단 멤버가 느끼는 감동은 남다르다. 고영표는 2014년 2차 1라운드 10순위로 KT의 부름을 받았다.
2014년은 KT가 2군에서 시즌을 치르던 때라 고영표도 입단 첫 해를 2군에서만 보냈다.
환경은 열악했다. 당시 수원 KT 위즈파크가 공사 중이라 성균관대 야구장을 홈으로 썼다. 팀의 밑바닥부터 다지는 기간, 더부살이는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1군 데뷔 후엔 성적에 발목이 잡혔다. 팀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최하위만 했고 2018년에도 9위에 그쳤다.
고영표는 "성대에서 훈련을 할 때 환경이 좋지 않았다. 설움도 있었다. 매년 10등을 할 때도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KT는 이강철 감독 부임 후인 2019년 6위로 올라서더니, 2020년엔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다.
군대에 가기 전 "언제 우리 팀이 우승을 할 수 있을까"를 그렸다는 고영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나니 팀이 강해져 있어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 9위일 때 군대에 갔는데, 돌아오니 1등이다. 올라가는 과정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팀이 우승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군 입대 전 고영표는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에서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다. 복귀 첫 시즌인 올해는 더 무서운 투수가 됐다.
고영표는 올 시즌 26경기에서 21차례 퀄리티스타스(QS, 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하며 11승6패 평균자책점 2.92의 성적을 냈다.
자신도 깜짝 놀란 복귀 첫 시즌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성적이다. 생각보다 전반기를 선방했는데 후반기엔 더 좋아졌다. 안 아프고 한 시즌을 치른 것도 좋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심리적인 부분이 컸다. 이전에는 한 번씩 흔들릴 때가 있었다. '내 방법이 잘못됐나'를 고민했다. 그런데 박승민 코치님, 이승호 코치님계서 '문제없다. 왜 문제를 만드냐'고 하시면서 옆에서 멘털을 잘 잡아주셨다"고 한 단계 도약한 비결을 짚었다.
여기에 팀도 좋은 성적을 냈다. "워낙 급상승을 해서 실감이 안 나기도 한다. 우승을 했는데도 '이렇게 잘하는 팀이었나' 새삼 느껴질 때가 있다"면서 "다행히 팀이 잘할 때 나도 잘해서 기여를 한 것 같아 의미가 있다"며 웃음지었다.
그는 올해 아리엘 미란다(두산 베어스),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KT)와 함께 리그에서 QS를 가장 많이 한 투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국시리즈에서는 불펜 투수로만 3경기를 뛰었다.
이강철 감독은 우승 후 "고영표가 (볼펜 전환에) 서운해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영표는 "서운함이 있긴 했지만, 감독님께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실 선발로 꿈꾸던 한국시리즈를 나갈 수 있단 생각을 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QS를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터라 중간으로 나간다는 것에 잠시나마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이라고 보탰다.
선발이 견고했던 KT는 고영표가 허리를 잘 지탱해준 덕에 4승무패로 시리즈를 끝냈다. '4경기'로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4차례 선발승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영표는 "선발로 한국시리즈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지만, 만약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오면 더 담담하게 불펜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강팀'의 힘을 유지해나갈 시간이다. 고영표는 "하던 대로만 나아가도 더 강해질 것 같다. 우리 팀은 선발도 다 좋고, 불펜도 다 좋다. 시리즈 때 수비와 타격도 정말 좋지 않았나. 큰 이탈만 없다면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평가하는 시즌을 지나 이제는 또 다른 꿈을 꾼다. "홈 구장인 위즈파크에서 꼭 우승해보고 싶다. 그때는 선발도 해보고 싶지만, 불펜으로 나간다 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듬직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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